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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뭐 이런 '식빵'이 다 있나

  • 2019.08.19(월) 09:15

이지영 신세계푸드 베이커리기획 파트너 인터뷰
두 달 만에 40만개 판매한 '국민식빵' 기획·개발
'간식' 아닌 '주식' 타깃…'바게트 식빵' 인기몰이

식빵은 설렘이었다. 어머니께서 식빵 심부름을 시키는 날은 특식을 먹는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주신 천 원짜리 몇 장을 손에 꼭 쥐고 집 근처 독일빵집으로 날아갈 듯 달렸다. '오늘은 무엇을 해주시려나'하는 기대감에 숨이 찬 줄도 몰랐다. 특식이라 해봐야 별것 없었다. 토스트나 딸기잼을 발라주시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기분이 좋으시면 감자 샐러드를 만들어 식빵 사이에 끼워주시곤 했다. 소박한 특식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만날 뻔한 밥과 반찬에서 벗어나 색다른 것을 먹는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식빵은 그렇게 내겐 늘 특별한 음식이었다. 누군가는 그 흔한 식빵이 뭐가 그리 특별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식빵은 그리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를 싸오는 친구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실 식빵을 밥 대신 먹는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게 식빵은 언제나 간식이었을 뿐이다. 중학교 때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가 늘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싸오는 것을 보고는 "샌드위치가 밥이 돼?"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충분하다"라고 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거늘 어떻게 빵이 한 끼가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다.

그런 내게 최근 신세계푸드에서 내놓은 '국민식빵'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제대로 읽은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였다. 잘 됐다 싶었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식빵 따위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 인터뷰를 문의했던 것은 2주 전쯤이었다. 하지만 인터뷰이가 휴가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기다렸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한 달이 걸리더라도 만나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지난 13일 이마트 자양점에서 이지영 신세계푸드 베이커리기획 파트너를 만났다. 신세계푸드의 히트작 '국민식빵'을 기획, 개발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지영 신세계푸드 베이커리기획 파트너(사진=이명근 기자/qwe123@).

이 파트너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대학에서 외식조리학을 전공하고 점포 인턴으로 일하다 지난 2013년 신세계푸드에 입사했다. 그가 인턴으로 일했던 점포가 베이커리 매장이었다. 그와 빵의 인연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입사 이후 이마트 피자 등을 거쳐 현재는 이마트의 점포 내 베이커리 매장인 e-베이커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이력을 듣는 순간 '국민식빵'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터뷰 초짜였다. 인사를 나누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지만 잔뜩 얼어있었다. 사진 촬영에도 애를 먹었다.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다. 이 파트너는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긴장도가 높았다. 원하는 표정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어야 했다. 매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오가는 고객들과 동선이 겹쳐 몇 번씩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정말 힘든 촬영이었다.

장소를 옮겨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장 긴장했던 사진 촬영이 끝나서였을까. 그의 표정이 살짝 편안해졌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이 파트너가 '국민식빵'을 기획한 것은 지난 3월이다. 이마트는 최근 '지속 가능한 초저가 상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선보인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초저가 상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그때 떠오른 것이 식빵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파트너는 "이미 이마트 e-베이커리 식빵들은 기존 다른 브랜드 식빵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더욱 가격을 낮출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민식빵'"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푸드의 '국민식빵'은 기존에 우리가 접하던 식빵과는 다르다. 단순히 가격만 낮은 것이 아니라 레시피 자체가 다르다. 그는 "'국민식빵'은 바게트 식빵"이라며 "식빵에 바게트 레시피를 적용한 제품"이라고 밝혔다. 기존 식빵에는 우유, 버터 등의 '유지(油脂)'가 들어간다. 하지만 '국민식빵'에는 유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국민식빵'이 담백한 맛을 내는 데에는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다.

이 파트너는 "기존 식빵들은 유지가 들어가 촉촉함을 가지고 있다. 대신 가격이 올라가는 단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식빵'은 가격에 집중한 만큼 비용 요소를 과감히 배제했다. 대신 한 끼 식사 대용의 식빵인 만큼 담백한 맛을 올려 유지가 없는 단점을 보완했다. 기존 식빵이 간식용이었다면 '국민식빵'은 주식용을 타깃으로 했다.

'국민식빵'에는 또 다른 비밀도 숨어있었다. 기존 식빵은 드라이 이스트를 사용하는 반면 '국민식빵'은 생(生) 이스트를 사용했다. 이 파트너는 "생 이스트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관리가 힘들어 기존 식빵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국민식빵'은 생 이스트를 사용해 가격을 낮추고 풍미를 높였다"라고 강조했다.

신세계푸드가 '국민식빵'에 관리가 까다로운 생 이스트를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민식빵'은 이마트 e-베이커리 각 매장에서 직접 반죽을 한다. 덕분에 각 매장에선 당일 판매할 '국민식빵'의 양에 맞춰 관리와 보관이 까다로운 생 이스트의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었다. 결국 생 이스트 사용으로 풍미는 높이고, 가격은 낮춤과 동시에 신선함을 담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처음 '국민식빵' 출시를 준비할 당시만 해도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식빵류는 생산량이 한정적인데다, 생산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며 "따라서 '국민식빵'을 생산하려면 기존 다른 제품 생산라인을 멈추고 그 라인에 '국민식빵'을 넣어야 했다. 그만큼 실패에 대한 부담이 컸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세계푸드는 '국민식빵' 생산을 위해 기존 샌드위치 식빵 라인을 멈추는 결단을 내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파트너는 '국민식빵' 개발을 위해 한동안 식빵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는 "식빵은 계속 놔두고 먹는 음식"이라며 "그래서 시간차를 두고 계속 먹어봐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식빵의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계속 먹었다"라고 말했다. 경쟁사들의 식빵도 50가지나 직접 먹고 테스트했다. 나중에는 같은 팀뿐만 아니라 옆 팀에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였다.

그는 "현재 판매하고 있는 '국민식빵'은 최종 후보로 오른 여섯 가지 레시피 중 하나였다"면서 "최종 시식회에서 현재의 레시피가 선택이 됐고 나도 내심 이것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레시피가 가장 맛이 좋았던 것은 물론, 생산도 안정적이었다. 또 원가율도 가장 좋았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식빵'의 대히트 뒤에는 그의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숨어 있었다.

이 파트너의 이런 노력 덕분에 '국민식빵'은 출시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현재 '국민식빵'은 하루에 5000개씩 팔리고 있다. 주말에는 7000~8000개씩 판매된다. 지난 12일에는 출시 두 달여 만에 누적 판매 40만 개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대박을 친 셈이다. 이번 주부터는 SSG닷컴을 통해서도 판매된다.

그는 "다행히도 출시하자마자 반응이 무척 좋았다"면서 "사진 행사 등을 진행하지도 않았는데 입소문이 났다. 그 덕분에 트레이더스 등에서 우리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지만 트레이더스의 타깃은 대용량을 원하는 고객들인 만큼 점포에서 직접 반죽을 해야 하는 '국민식빵'을 넣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불가능하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 파트너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일자별 매출 현황을 체크하는데 그때마다 무척 뿌듯하다"면서 활짝 웃었다. 방금 전 사진 촬영 때는 보지 못했던 환한 웃음이었다. 그동안 '국민식빵'이 실패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잘 나가던 생산 라인 하나를 멈추고 자신이 기획, 개발한 제품을 넣는다는 사실은 6년 차 파트너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그 부담을 잘 이겨냈다.

마지막으로 '국민식빵'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를 부탁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 파트너는 작심한 듯이 말했다. 그는 "가격이 좋은 제품이다 보니 품질을 의심하는 이야기가 간혹 들릴 때가 있다"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억울하고 속상하다. 혹자는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겠지만 '국민식빵'은 꼭 필요한 재료만 넣어 최선을 다해 만든 제품이다. 품질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만하면 됐다"라는 나의 말에 그는 큰 숨을 내쉬었다. 정말 많이 긴장했던 듯싶었다. 그는 "사실 인터뷰가 잡히고 지난 주말과 어제까지 내내 가슴 졸이며 지냈다. 기존에 나갔던 인터뷰 기사도 다 찾아보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지도 체크했다. 정말 너무 떨려서 죽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내가 이 파트너 입장이었아도 그랬으리라 싶었다. 좀 더 편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빵'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 '팡(pao)'에서 유래했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빵'으로 정착했다. 어원은 그리스어인 'pa', 라틴어인 'panis'다. 그래서 회사를 뜻하는 영어인 'company'는 ‘com(함께)+pan(빵)’으로 ‘함께 빵을 먹는 친구’라는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엇인가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교감을 나누고 하나라는 공동체를 이룬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 파트너는 '국민식빵'을 구매하는 주 고객층이 가족단위라고 했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이 없어 온 가족이 빙둘러 앉아 밥 한 끼 제대로 함께하지 못하는 요즘. 그가 '국민식빵'을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제안한 것에는 이런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살짝 '빵=간식'이라는 나의 오랜 생각이 흔들렸다. 오늘 점심에는 샌드위치를 한번 먹어볼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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