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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마켓컬리 본사엔 '농장'이 있다

  • 2019.11.12(화) 09:41

노상래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팀장·김정화 애널리스트 인터뷰
데이터 속 숨은 의미 찾아 유용한 정보로 가공
'데멍이' 등으로 정보 제공…샛별배송 성공 견인

사실 '마켓컬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마켓컬리 초창기 사용자다. 하지만 마켓컬리를 이용할수록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했다. 주문 상품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 포장을 부담스러워했다. 결정적으로 다른 브랜드에 비해 비싸다고 했다. 마켓컬리는 '품질'을 강조했지만 아내는 품질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아내의 영향 탓에 나도 마켓컬리를 이용하지 않았다. 간혹 SNS 등을 통해 마켓컬리가 내놓는 특가 상품들을 보면 순간 '혹'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의 지엄한 '명령'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편은 늘 마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마님의 기분을 거스르면 곧 재앙이 닥친다. 10년 넘게 같이 살며 터득한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나만 그런 건가? 그렇다면 무척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업(業)'이 업이다 보니 마켓컬리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마켓컬리는 국내 최초로 '새벽 배송'을 시작해 업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고객들의 지적 사항 중 하나였던 포장재를 전면 교체하는 기민함도 보여줬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즉각 반영해 실행으로 옮기는 모습에 마켓컬리에 대해 내가 가졌던 부정적인 시각이 살짝 누그러졌다.

얼마 전 마켓컬리 사람들을 만났다. 그동안 마켓컬리에 대해 가졌던 불만-사실은 마님의 불만-을 전달하고 싶었다. 공격할 무기들을 잔뜩 안고 자리에 나섰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공격은커녕 마켓컬리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특히 '데멍이', '야옹이' 이야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궁금해졌다. 그랬다. 공격하러 갔다가 완전히 무장해제가 돼서 돌아왔다.

노상래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팀 팀장(왼쪽)과 김정화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팀 애널리스트.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지난 5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마켓컬리 본사를 찾았다. 마켓컬리에는 이름부터 재미있는 조직이 하나 있다. '데이터 농장팀'이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마켓컬리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켓컬리가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켓컬리 본사는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었다. 전날 과음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걸어 올라갔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점심시간이 지난 평일 오후 시간. 공원은 한적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보라색 후드 티셔츠를 입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켓컬리 사람들이다.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마켓컬리 지하 3층에는 콘퍼런스룸이 있다. 탁 트인 공간이다. 광장 같은 곳이다. 구석구석에 넓은 창을 가진 회의실이 있다. 마켓컬리 직원들은 광장에 모여 자유롭게 회의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문득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이 떠올랐다. 콘퍼런스룸은 북적였다. 모두들 표정이 밝았다. 방금 전 근처 공원에서 봤던 보랏빛 후드 티셔츠 사람들의 표정 그대로였다. 마켓컬리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반듯하게 생긴 청년 두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이날 인터뷰의 주인공들이다. 편안하고 선한 인상의 인터뷰이들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왠지 인터뷰가 재미있게 흘러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서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그래서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무언가 창의적이면서도 겸손하며 밝을 것 같은 인상의 두 사람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나의 안목에 스스로 감탄했다.

마켓컬리의 데이터 농장팀을 책임지고 있는 노상래 팀장은 시종일관 밝고 진지했다. 사실 첫 마디부터 '알고리즘'을 이야기를 꺼내 내심 당황했다. 문과 출신인 내게 알고리즘은 너무 어려운, 아니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단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쉽게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데이터 농장팀과 알고리즘이 연관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팀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다.

그러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는 "예를 들어 사내에 다른 팀에서 '우리가 오늘 얼마나 벌었지?'라는 질문에 대한 데이터를 원한다면 데이터 농장팀에서는 관련 데이터를 그 팀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가공해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다른 회사에서는 개발팀 등이 이런 데이터를 취급하지만 우리는 데이터 농장팀에서 담당한다"라고 말했다.

즉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팀은 사내 다양한 팀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팀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데이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팀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해당 팀의 니즈에 맞춰서 보내준다. 데이터에 담긴 의미와 시사점 등까지 모두 망라해 종합적인 정보를 보여준다. 데이터 속 숨은 의미를 분석해 해당 팀이 사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밑바탕을 깔아주는 셈이다.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은 2016년 12월에 처음 만들어졌다. '농장'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재미있다. 마켓컬리의 원래 법인명이 '더 파머스'였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원래는 고급 분석(Advanced Analysis)팀이었다. 팀원들끼리 모여 '더 파머스'라는 법인명을 활용해 '농장'을 떠올렸다. 장난이었다. 그런데 인사파트에서 조직도에 덜컥 '데이터 농장팀'을 넣었다. '데이터 농장팀'은 그렇게 시작됐다.

데이터를 보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데이터 농장팀이 보내는 데이터는 '데이터를 물어다 주는 멍멍이'를 통해 전달된다. 데이터에 대한 피드백을 원할 경우에는 '피드백을 기다리는 야옹이'를 활용한다. 예측과 관련된 툴(tool)도 있다. 이들은 '무당벌레'로 부른다. 미래를 예측하는 무당에서 따왔다. 마켓컬리 임직원들의 휴대폰에는 '데멍이'와 '야옹이', '무당벌레' 아이콘이 수없이 오간다.

노 팀장과 자리를 함께한 김정화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 애널리스트는 자신을 '소작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데이터 농장 3년 차 애널리스트다. 데이터 농장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현재 데이터 농장에는 7명의 '데이터 농부'가 일하고 있다. 그가 소작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유다. 소작농이라고 소개하며 훅 치고 들어오는 순간 잠시 멍했다. 아직 그들의 언어에 익숙지 않은 탓이다.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서는 그의 데이터 농장팀에 대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과거에는 판매량을 알려면 MD들이 일일이 찾아봐야 했는데 이제는 데이터 농장팀에서 데이터를 분석, 가공, 관리하면서 각 부문에서 각자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 팀장은 "데이터 활용 시 데이터 분석팀이 알고리즘으로 접근하면 분석과 개발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면서 "다른 회사에서는 R&D나 개발팀에서 이런 일을 진행하지만 우리는 데이터 농장팀에서 회사 조직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애널리스트도 "데이터팀이 이렇게까지 비즈니스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다른 회사의 경우 현업부서에서 데이터를 요청할 경우 데이터를 받는 팀에서 다시 가공을 해야 하는 형태로 주는 반면 우리는 다름 팀과의 유기적 상관관계와 활용법 등 현실적인 고민까지 함께 담아 데이터를 넘겨준다는 점이 다르다"라고 밝혔다.

데이터 농장팀의 이런 노력은 마켓컬리가 단기간 내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업체들의 데이터팀이 엑셀 파일로 된 로데이터(raw data)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그 데이터 속에 숨겨진 장면과 의미를 읽어준다는 것은 데이터가 갖고 있는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켓컬리는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니즈와 트렌드를 쉽고 빨리 읽어낼 수 있었다.

노 팀장은 "커머스 사업이다 보니 전체 사업 구조가 어떻게 진행되고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다"면서 "그래서 물류센터에 가서 실물 배송 과정과 작업자분들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등을 직접 체험해보기도 했다"라고 소개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정확한 데이터를 파악하기 위해 재무팀의 매일 결산 내역을 일일이 다 뜯어본 적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데이터의 출처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다"라고 전했다.

최근 데이터 농장팀의 시선은 고객에게로 향해있다. 지금까지는 마켓컬리 내의 데이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마켓컬리를 이용하는 고객들 안에 숨겨진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거기에 마켓컬리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켓컬리가 속한 시장은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핫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마켓컬리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고객들이 데이터 농장팀에 던져주는 또 다른 형태의 데이터들이다. 마켓컬리에게 고객은 또 다른 형태의 '데멍이'다. 반대로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팀은 고객의 피드백을 간절히 바라는 '야옹이'다. 마켓컬리 데이터 농장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노 팀장은 "모든 것은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고객에 대한 분석이나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애완견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고객에게는 애완견에 대한 상품 추천이 나와서는 안된다"면서 "매출 확대도 중요하지만 사이트에 고객이 들어와 주문할 때까지 어떻게 행동하고 활동하는가를 살펴 고객의 행동과 상품을 연관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 애널리스트도 "앱에서 고객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분석한다"면서 "데이터로 불분명했던 부분들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관련 부서에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 미리 인터뷰를 하고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제공한다. 고객을 해석할 때도 마케팅에서 어떻게 하면 구매를 유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욱 시너지가 난다"라고 설명했다.

흔히들 마켓컬리의 성장은 '샛별배송'에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샛별배송이 가능했던 것은 그 뒤에 데이터 농장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상품이, 얼마나 판매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해주고 있는 곳이 데이터 농장팀이다. 고객이 가장 원하는 상품과 시간, 수량 등을 정확하게 집어주는 데이터 농장팀이 없었다면 샛별배송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을 물었다. 노 팀장과 김 애널리스트는 주저 없이 '데이터'를 외쳤다. 노 팀장은 "우리나라에서 데이터로 브랜딩을 하고 싶다"면서 "데이터를 함께 잘 활용해 일을 하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 애널리스트도 "알고리즘에 집중해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을 품절 없이 살 수 있도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는 내내 '데이터'라는 단어만 생각했다. 한 시간여 동안 '데이터'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파편화된 데이터들을 묶고 그 속에서 규칙을 찾아 숨겨진 의미를 발굴해 내는 그들이 오늘의 마켓컬리를 있게 한 진짜 주인공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문자가 왔다. 아내다. "여보, 혹시 데이터 남으면 좀 보내주세요". 그래, 나도 '데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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