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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채소 소믈리에가 부케 만든 사연

  • 2020.02.17(월) 14:00

김혜정 CJ프레시웨이 키즈 전담 셰프 인터뷰
'채소·해조류' 주제 식습관 개선 프로그램 운영
채소 부케·해조류 육수팩 등 아이들 흥미 높여

맛있게 음식을 씹던 아이의 입이 갑자기 멈춘다. 아이는 인상을 쓴다. 그러고서는 음식을 확 뱉어버린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아이의 대답은 항상 같다. "파". 밥과 다른 반찬 사이에 꼭꼭 숨겨둔 파를 어쩌면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채소를 좋아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혹여 편식하지 않고 채소를 잘 먹더라도 '좋아한다'라고 할 정도로 찾아서 먹는 아이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물며 어른들 중에서도 채소를 싫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어쩌면 채소를 좋아하는 취향을 타고나기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채소에는 영양소도 많고 실제로는 맛도 좋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리라. 무언가를 배워서 잘 알게 되면 더 친숙해지고 괜히 좋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그 길은 고난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귀찮기도 하고 배운다고 해서 사람의 음식 취향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지 않은가. 배우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쉽지만은 않을 터다. 그런데 이 어려운 걸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를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일·육아 병행하며 '채소 소믈리에'가 되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CJ프레시웨이(이하 프레시웨이) 본사에서 김혜정 키즈 전담 셰프를 만났다. 김 셰프는 프레시웨이에서 채소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채소와 관련한 영양 교육과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는 체험 등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김 셰프는 그냥 셰프가 아니다. 그는 채소 소믈리에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 10월 CJ프레시웨이가 '아이누리 채소학교'를 신설하기로 하면서 김 셰프는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채소학교를 그냥 시작하기는 싫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셰프가 '제대로 해보자'라고 결심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사실 자녀의 편식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특히 둘째 딸이 어린이집에서 당근을 먹고 토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명색이 키즈 전담 셰프인데 자녀가 그토록 편식을 한다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자격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김 셰프는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웠다기보다는 일, 육아와 함께하다 보니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라며 "주말에 수업을 듣고 아이를 재운 뒤에야 짬을 내서 새벽에 잠깐 보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셰프는 이런 노력 끝에 6개월 만에 채소소믈리에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채소 부케' 만들며 아이들 흥미 높여

채소 소믈리에란 채소나 과일의 가치를 알리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채소가 어떻게 재배되고 어떤 영양소가 들어 있는지 등을 교육받아 취득하는 자격증이다. 이렇게 보면 김 셰프가 진행하는 '채소 학교'와 딱 맞아떨어지는 자격증인 듯하다. 이제 '학교'를 운영하기만 하면 아이들의 식습관을 손쉽게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김 셰프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에는 욕심이 나서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메뉴를 만들곤 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라며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아이들이 채소를 만져보기만 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체험을 깊이 있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니 아이들이 더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라고 덧붙였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선생님(김 셰프)에게 '오늘 채소를 먹지 않겠다'라는 엄포를 놓는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에 대한 김 셰프의 대응법은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교육을 했는데 한 아이가 수업도 시작하기 전에 '채소 먹어보라는 소리 하지 말라'라고 했다"라며 "그래서 저는 애들한테 채소를 먹으라는 얘기를 아예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체험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채소를 입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럴 때 '오늘도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김 셰프는 아이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채소로 부케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도 직접 내놨다. 그는 "어머니가 플로리스트를 해서 항상 꽃다발을 만드시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라며 "수업 시간에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라고 소개했다.

김혜정 CJ프레시웨이 키즈 전담 셰프가 아이누리 채소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CJ프레시웨이 제공)

◇ '바다채소 학교'부터 학부모 대상 프로그램까지 

이런 노력이 통한 덕분일까. 이제는 수업을 통해 채소에 관심을 갖게 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수업 내내 툴툴대던 한 아이가 수업이 끝난 뒤 김 셰프에게 다가와 "꿀잼"이라고 속삭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 셰프는 이 일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꼽았다.

김 셰프는 채소 학교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자 올해부터는 '바다채소 학교'도 열기 시작했다. 김이나 다시마, 미역, 파래 등 해조류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채소뿐만 아니라 해조류를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이 수업에서는 해조류로 '육수 팩'을 만들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김 셰프는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해조류에서 나는 냄새나 식감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업을 통해 친숙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라며 "이 수업에서는 멸치육수 등을 함께 맛보면서 감칠맛 등 미각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 "부모부터 식습관 개선…아이와 함께 요리를"

김 셰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자녀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녀분들은 이제 채소 잘 먹겠네요"라는 질문에 김 셰프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편식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 것 같다"라며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을 많이 열었다"라고 말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김 셰프는 요즘 집에서 요리를 할 때면 항상 아이들과 함께 한다고 한다. 식재료를 다듬는 일부터 간을 보는 일까지 맡긴다. 그는 "시금치 등 채소를 다듬는 것부터 아이들에게 맡기다 보니 이제는 가위질도 아주 잘하는 정도가 됐다"라며 "아직 마음을 다 연 것은 아니지만 점점 바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주는 것 못지않게 어른들이 먼저 식습관을 고치는 게 중요하다"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아이들은 부모들을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채소를 즐겨 먹다 보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래서 그는 학부모들을 위한 식습관 개선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김 셰프는 "손끝 오감놀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변비 예방과 편식 개선, 면역력 개선 등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교육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셰프는 "제가 아이들의 엄마니까 더욱 사명감이 드는 것 같다"면서 "조금만 노력하면 아이들의 식습관 개선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노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채소나 과일 등 신선식품과 관련한 새로운 교육들을 지속해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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