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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진로이즈백'이 쏘아올린 작은 공

  • 2019.11.04(월) 17:10

롯데주류와 공병 갈등…무학 등도 '포장 차별화' 움직임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20대 공략, 젊고 트렌디한 이미지 강화. 원조 소주 브랜드의 정통성 계승과 함께 새로운 소비자층 확대 기여 기대."

요즘 소주 시장에서 '핫'하다는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은 지난 4월 처음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시작은 요즘 많은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는 '레트로'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거였습니다. 옛 감성을 자극하는 레트로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놨다는 의미로 '뉴트로'라는 수식어를 붙였고요.

너도나도 '뉴트로' 내지는 '레트로' 제품을 내놓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진로이즈백이 대단히 획기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이트진로의 기존 주력 소주 브랜드인 '참이슬'에 젊은 이미지를 주기 위한 제품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실제 하이트진로도 내부적으로는 진로이즈백의 연간 판매량 목표치를 연간 1000만병 정도로 낮게 잡았다고 합니다. 레트로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데다, 진로이즈백에 대한 반응도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진로이즈백은 예상외의 '히트'를 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출시 72일 만에 연간 목표치 1000만병을 돌파했고요. 매달 꾸준히 300만~350만병 정도 팔린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는 이런 수요 증가에 대응해 지난달 말부터 진로이즈백의 생산 라인을 늘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진로이즈백이 예상 밖의 인기를 끌면서 한쪽에서는 경쟁사와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소주 시장에서 참이슬을 뒤쫓고 있는 처음처럼의 롯데주류와의 갈등인데요. 롯데주류 공장에 쌓여 있는 진로이즈백의 공병 420만병가량을 하이트진로 측에 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두 업체가 기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명근 기자 qwe123@

통상 소주 제조 업체들은 각자 브랜드와 상관없이 공병을 수거하는데요. 이중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초록병'의 경우 자체 생산 브랜드로 재활용을 합니다. 반면 진로이즈백 같은 다른 형태의 병의 경우 일정 비용을 받고 해당 제조사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이 비용을 어떤 식으로 책정하느냐를 두고 두 업체가 갈등하는 모습입니다.

그러자 뒤늦게 환경부가 나서서 경쟁사 공병을 재분류하는데 드는 비용을 산출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정부가 중재에 나선 만큼 '적정 비용'이 정해지면 이번 갈등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갈등이 단순히 '비용 문제'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국내 소주 시장 1·2위 간 자존심 싸움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인데요. 왜 이런 해석이 나오는 걸까요.

사실 진로이즈백의 판매량은 이슈가 되는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진로이즈백은 앞서 언급했듯이 매달 300만~350만병 가량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참이슬의 월 판매량이 1억 5000만~1억 8000만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판매량 만으로 소주 시장을 뒤흔들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데도 진로이즈백이 소주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선 국내 소주 시장의 경우 브랜드별 점유율의 변화가 적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참이슬의 경우 국내 점유율이 55% 안팎이고, 처음처럼이 20%가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이에 따라 소주 시장에서는 '작은' 변화라도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간 소주를 마실 때면 자연스럽게 참이슬 아니면 처음처럼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점차 진로이즈백이라는 신제품을 고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경쟁사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하이트진로는 소주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절대 강자'입니다. 1위 업체가 더 몸집을 불리는 형국이니 한 자릿수 대의 점유율로 '생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소 브랜드의 경우 더욱 크게 느껴질만한 흐름인 셈입니다. 

지난 6월 한라산소주가 기자간담회를 하며 내놓은 홍보 이미지. 한라산 소주의 자사 제품이 유일한 투명 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한라산 소주 제공)

진로이즈백은 이 외에도 국내 소주 시장에 다른 측면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도 합니다. 진로이즈백이 인기를 끈다는 소식이 들린 뒤 무학도 뉴트로 제품인 '무학'을 새로 내놨는데요. 무학 역시 푸른빛의 투명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학은 영남권의 강자로 '좋은데이'라는 소주를 판매하는 업체입니다.

이에 따라 초록병 일색이었던 국내 소주 시장에는 점차 투명병 내지는 푸른색의 소주 병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실제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제품의 차별화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라도 다양한 종류의 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기도 합니다.

국내 소주 시장에 '초록병' 붐이 일어난 건 지난 1994년쯤입니다. 당시 두산주류(현 롯데주류)가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초록병이 담긴 '그린 소주'를 내놨고, 이 제품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경쟁사들도 앞다퉈 초록색 병을 사용한 건데요. 이게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니 이제는 변할 때도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처럼 진로이즈백은 국내 소주 시장에 크고 작은 메시지를 던지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소주 시장에 또 다른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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