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개정안이 논의되면서 쿠팡과 마켓컬리를 비롯해 각종 배달 대행 서비스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생활물류법 개정안은 '택배서비스사업을 하려는 자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른 운송사업 허가를 취득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쿠팡, 마켓컬리 등은 배송인력의 상당수를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에게 위탁(지입)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개인배송기사들은 생활물류법의 개정 내용에 따라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업무를 볼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택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생활물류법 개정에 나서는 중이다.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택배 사업에 등록제를 도입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배달 대행 업체 등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 종사자는 심사기관을 통한 인증제를 도입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살펴보면 개인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을 하려면 '화물자동차' 한 대를 사용해야 한다. 허가를 위해서는 화물자동차 등록은 물론 차고지 설치 여부와 적재물배상보험 등의 가입 여부, 화물운송 종사자격 보유 여부 등도 따져본다. 하지만 현재 개인배송기사 대부분은 트럭과 같은 영업용 화물자동차가 아니라 개인의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다. 배송기사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법 개정이 된다면 지금과 같은 구조는 해당 법안의 규율 범위 밖에 놓이게 된다. 과거 많은 논란 끝에 사라진 '타다'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법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다. 시설·장비·영업점 등 일정 기준 이상을 갖춰야만 택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럴 경우 관련 종사자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 문제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비정규직 배송기사를 대거 채용하고 있는 업체 입장에서도 정규직 배송기사 채용 등 추가 투자가 불가피해진다. 결국 지금과 같은 규모의 배송인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면서 결국 새벽배송이나 당일배송 등의 서비스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소비자와 서비스 공급자 모두에게 부정적이라는 학계의 의견 등이 나오면서 폐기된 바 있다. 앞서 20대 국회 국토위 검토보고서는 "영업용 화물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사업과 일반인이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해 배송하는 사업 등은 제정안의 규율 범위 밖에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영업을 제한하는 형태의 규제 법안은 소비자와 서비스 공급자 모두에게 부정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21대 국회에 똑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자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국회 내 여당의 영향력이 높아 법안이 조율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전자상거래의 발달로 다양한 배송서비스가 나오면서 배송시장 규모는 2009년 2조7000억 원 규모에서 지난해 6조3000억 원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연평균 성장률은 8.8%다.
그러다보니 기존 규제로는 쿠팡플렉스나 각종 배송서비스 등 새로운 형태의 사업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송서비스의 발달은 반길 일이지만 관련 규제가 부족해 종사자들의 권익과 안전 등의 문제는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쿠팡 등 일부 업체는 향후 법안 개정을 대비해 대규모 배송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현재 쿠팡은 쿠팡친구(옛 쿠팡맨)의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사업자 형태의 쿠팡 플렉스 배송기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쿠친으로 입사하길 권고하는 중이다.
현재 해당법안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민주당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연대 등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면 공공운수노조 산하 택배노조와 일반화물·개별화물·용달화물연합회 등 화물운송 3단체 등은 공동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상위단체가 없는 개인사업자 배송기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관련 소식을 공유하며 향후 입법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한 배송기사는 "지금은 없어진 '타다' 기사로 일하다가 일자리가 사라져 현재는 승용차로 배송일을 하며 식구를 먹여살리고 있다"며 "법안에 대한 섬세한 논의 없이 거대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입법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