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라이벌은 새벽배송 시장을 삼분한 쓱닷컴과 마켓컬리일까요.
이 물음에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으로 떠올리며 그렇다는 답을 많이 하겠죠. 하지만 이제 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쿠팡의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아왔습니다. 막대한 투자 덕분에 가능한 서비스다보니 경쟁사들로서는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풀필먼트 인프라를 갖춘 업체가 유통업계에 뛰어든다면 어떨까요.
풀필먼트(fulfillment)란 사전적으로는 이행, 수행, 완수 등의 뜻이 있습니다. 물류업계에서는 풀필먼트를 '고객의 주문 처리 과정'이라는 뜻으로 씁니다. 이런 방식을 처음으로 사용한 곳은 미국의 아마존입니다.
지난 2006년부터 아마존은 FBA(Fulfillment By Amazon)라고 불리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아마존은 쿠팡 등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입점업체들이 들어와 있는 플랫폼입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물건 자체는 각 입점업체들이 포장해 배송해줘야 했습니다. 배송에 대한 서비스 수준은 입점업체마다 제각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풀필먼트를 도입하면서 아마존은 상품을 직접 배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입고와 검수, 피킹(Picking), 출하, 배송을 모두 아마존이 해줍니다. 입점업체는 제품을 아마존의 창고에 가져도 두기만 하면 됩니다. 입점업체와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수준도 상향평준화됐습니다.
아마존을 충실하게 벤치마킹하고 있는 쿠팡도 풀필먼트 서비스 덕분에 시장의 강자가 된 케이스입니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통해 물류를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당일배송과 새벽배송 서비스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쓱닷컴과 마켓컬리 등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규모입니다. 전문가들은 전국단위의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이 가능한 유통회사는 쿠팡뿐이라고 분석합니다.
경쟁사 입장에서 투자를 늘리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투자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쿠팡은 전국에 축구장 193개 넓이의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고 현재 대구에 초대형 물류센터를 건립하는데 총 3200억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로켓배송센터는 지난해 168개로 5년 전보다 6배 늘었으며, 개발자와 배송·물류 인력 등 약 3만 명을 지난해 직·간접 고용했습니다. 한 해 인건비 지출만 1조4000억원 수준입니다.
이러는 동안 쿠팡의 적자는 심각해졌습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손실만 4조원이 넘습니다. 수조원을 쿠팡에 쏟아부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대기업 계열인 쓱닷컴이나 떠오르는 별인 마켓컬리라고 해도 이 정도의 투자와 손실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쿠팡의 독주는 막을 수 없는 것일까요. 쉽지 않던 문제였는데 최근 다른 수가 보입니다. 그동안 쿠팡의 라이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기업이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바로 CJ대한통운입니다.
CJ대한통운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물류창고를 운영 중입니다. 전국 140개 물류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창고 수는 쿠팡보다 적지만 규모 차이가 큽니다. CJ대한통운의 창고업 등록 면적은 총 352만827㎡(106만6917평)로 쿠팡의 2.5배입니다. 물류업계 2위인 롯데글로벌로지스와도 두 배 넘게 차이가 납니다.
진짜 물류 전문 기업이 유통업에 등판한 것입니다. CJ대한통운은 풀필먼트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운 기업들에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파트너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네이버와 이베이코리아, LG생활건강 등 무시할 수 없는 강자와 손을 잡았습니다.
최근 CJ대한통운은 이베이코리아와 협력해 스마일배송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CJ대한통운의 경기도 동탄물류센터에서 내보낸 상품을 다음날 주문 고객에게 배송하는 ‘스마일배송’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유통업계가 주시하고 있는 네이버도 CJ대한통운의 파트너가 됐습니다. 네이버는 LG생활건강 등 일부 브랜드 제품을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서 살 경우 CJ대한통운 풀필먼트 시스템을 이용해 주문 후 24시간 이내에 배송해 줍니다.
CJ대한통운이 제공하는 풀필먼트 서비스는 진정한 풀필먼트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쿠팡이나 아마존은 직매입을 한 제품을 풀필먼트로 처리하지만 CJ대한통운은 매입은 하지 않고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쿠팡에서 안 팔리는 상품의 재고 부담은 쿠팡이 지지만, CJ대한통운은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해 팔리지 않은 물건에 대한 책임은 각 판매자가 져야 합니다.
판매자 입장에서 네이버나 이베이코리아에 수수료를 내왔는데 또 CJ대한통운에 풀필먼트 관련 수수료 지출도 생깁니다.
하지만 장점도 뚜렷합니다. 쿠팡과 쓱닷컴, 마켓컬리의 파트너가 아니라면 진입할 수 없었던 새백배송과 당일배송 시장에 제품을 올려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매출이 오를 수 있다면 수수료 부담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겠죠.
또 쿠팡의 풀필먼트는 쿠팡 입장에서 돈을 먹는 하마지만,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는 돈을 버는 효자입니다. CJ대한통운으로서는 이런 시장을 열어준 쿠팡에 절이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미국형 풀필먼트를 한국에 도입했고 CJ대한통운은 한국형 풀필먼트를 시작한 것"이라며 "점유율을 끌어올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성 개선에 나서야 할 쿠팡 입장에서는 아주 껄끄러운 상대를 만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시장의 경쟁이 시장의 진화를 끌어 낸 셈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일입니다. 풀필먼트를 둘러싼 유통사 쿠팡과 물류사 CJ대한통운의 이종(異種)격투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