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시장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은 네이버와 쿠팡의 양강 구도로 짜일 것이라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들어 곳곳에서 '합종연횡' 소식이 이어지면서 예상과는 다른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글로벌 유통 공룡인 아마존의 한국 진출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은 다시 안갯속에 빠져드는 분위기다.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과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짚어봤다. [편집자]
쿠팡과 네이버가 대한민국 이커머스 시장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쇼핑 플랫폼 중에서 지난해 점유율이 상승한 곳은 쿠팡과 네이버뿐이다. - 2020년 2월 27일, SK증권 리포트
올해 초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네이버와 쿠팡의 양강구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최근 수년간 쿠팡은 빠른 배송을 앞세워 급성장했다. 포털 공룡 네이버 역시 검색 서비스를 기반으로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앞으로 두 업체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리라는 전망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에서는 두 업체가 각각 뚜렷한 장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경쟁 업체가 이들을 추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간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 산업에는 뚜렷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없었다. 하지만 쿠팡과 네이버라는 '강자'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드디어(?) 시장이 '정리'되리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그런데 올해 하반기 들어 다시 '변수'가 나타났다. 각 업체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분주하게 '합종연횡'을 하기 시작하면서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글로벌 유통 공룡인 아마존의 한국 진출이다. 지난달 16일 11번가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이커머스 사업 협력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은 11번가를 운영하는 SK텔레콤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지분 참여 약정 방식으로, 11번가의 기업공개(IPO) 등 사업 성과에 따라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신주인수권리를 부여받는다.
우선 두 업체의 협력은 11번가에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다. 11번가는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 6%가량을 차지했다. 네이버, 쿠팡,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에 이은 4위 사업자 정도로 평가받는다. 11번가는 지난 2008년 옥션과 G마켓이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던 당시 후발 주자로 뛰어든 뒤 빠른 속도로 시장에 자리 잡으며 상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최근 쿠팡 등에 밀리면서 다소 주춤한 모습이었다.
물론 11번가는 여전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선두 그룹에 속해 있다. 이에 따라 아마존과의 시너지 여부에 따라 향후 큰 폭의 성장이 가능해졌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11번가 고객들은 아마존의 상품을 해외 직구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고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11번가는 다양한 상품군의 확대가 예상되고 거래 대금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11번가는 전통 오픈마켓 비즈니스 모델을 영위하는 플랫폼이며 이에 따라 지속해서 점유율이 하락했다"면서 "그러나 향후 아마존의 투자 유치 및 제휴 등을 통해 진화된 오픈마켓 비즈니스를 모델을 선보일 경우 내년 온라인 시장 재편의 새로운 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아마존만 놓고 보면 일단 '명성'에 비해서는 당장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국내에 단독으로 진출하는 게 아닌 데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이미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11번가와 아마존의 초기 사업 모델은 해외직구 플랫폼 정도"라면서 "해외직구 시장은 전체 소매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존이라는 이름만으로 이미 압도적 충성고객을 확보한 한국 업체들의 위기를 논할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자금력이 막강한 아마존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당장은 11번가와 제휴를 통해 '우회 진출'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향후 사업 성장 흐름에 따라 독자적으로 사업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은 여전히 역동성이 크기 때문에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업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할 경우 경쟁 구도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변수는 다른 곳에도 있다. 국내 편의점 1위 업체인 GS리테일은 최근 GS홈쇼핑을 흡수합병키로 했다. 합병이 성사하면 자산 9조 원, 연간 취급액 15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온·오프라인 '유통 공룡'이 탄생한다. GS리테일은 이후 KT와 디지털 물류 사업 협력을 위한 제휴를 맺은 데 이어 농협하나로유통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발 빠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GS리테일이 이번 흡수합병을 통해 모바일 사업에 집중적으로 공을 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GS리테일과 GS홈쇼핑은 각 영역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 잡긴 했지만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GS리테일 측은 이번 합병을 통해 현재 2조 8000억 원 규모인 모바일 커머스 채널의 취급액을 7조 원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1만 5000개에 달하는 편의점과 오프라인 점포들을 물류 전진 기지로 활용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송 전쟁'에 뛰어들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GS리테일의 목표대로 디지털 사업 확장에 성공할 경우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또 다른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이 손을 잡은 것도 큰 변수 중 하나다. 네이버의 경우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자체 물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 한계점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국내 택배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과 협력하기로 하면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특히 배송에 강점을 가진 쿠팡과의 진검승부가 예상된다.
이처럼 곳곳에서 합종연횡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아직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아서다. 이는 그만큼 아직 기회가 많다는 의미다. 실제로 네이버와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양강구도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두 기업의 점유율은 각각 10% 초반 정도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온라인 쇼핑 시장의 성장 속도가 더욱더 가팔라지고 있다"면서 "시장이 커지는 만큼 경쟁력만 갖춘다면 충분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내년 온라인 쇼핑 시장의 재편을 예상하고 있다"며 "재편의 주체는 차별화를 이룬 온라인 기업뿐 아니라 오프라인 인프라 경쟁력이 높은 기업도 해당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