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커머스 시장의 격변이 이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며 시장이 계속 성장했다. 쿠팡은 100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쿠팡의 성과는 시장 구도를 바꿨다. 신세계그룹은 과감한 투자로 이베이코리아를 손에 넣으며 네이버·쿠팡과 '3강 구도'를 만들었다. 인터파크·다나와는 새 주인을 맞았다. 리셀과 명품은 이커머스의 새로운 먹잇감으로 떠올랐다.
이커머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새로운 커머스 플랫폼들이 시장에 안착하면서 고객 경험의 수준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지금처럼 많은 플랫폼이 '춘추전국시대'을 형성하는 모습은 수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시장 성장세가 조금씩 꺾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커머스 시장 경쟁이 상대방보다 더 오래 버티기 위한 '치킨게임'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합종연횡'은 끝났다
올해 이커머스 시장의 최대 이슈는 쿠팡의 상장이었다. 쿠팡은 지난 설 연휴 직후 상장을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3월 공모가 35달러로 뉴욕증시에 입성했고, 한때 시가총액 100조원을 넘기며 'K-이커머스'의 힘을 입증했다. 상장을 통해 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한 쿠팡은 더욱 공격적으로 물류 투자를 이어갔다. 지방 권역 곳곳에 물류센터를 세웠다. ‘한국의 아마존’이 눈앞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쿠팡의 역습은 국내 유통공룡들에게 ‘발등의 불’이 됐다. 경쟁을 지켜본 후 낙오하는 플랫폼을 인수해 시장을 장악하려는 전략은 힘을 잃었다. 결국 유통공룡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는 신세계였다. 신세계는 이마트를 통해 올해 최대 인수합병(M&A) 매물 이베이코리아의 지분 80%를 3조4000억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네이버·쿠팡과 '3강'을 이뤘다. 이어 향후 5년간 1조원의 투자를 선언했다. 이마트 본사 건물까지 매물로 내놓을 만큼 '진심'이었다.
'합종연횡'도 활발했다. 야놀자는 인터파크를 인수하며 '여행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코리아센터는 다나와를 손에 넣으며 '빅데이터 이커머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번가는 무려 아마존을 간접적으로나마 국내에 '강림'시켰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발을 뺀 롯데쇼핑은 중고나라·한샘을 연이어 인수했다. GS리테일은 GS홈쇼핑과 통합하며 '퀵커머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CJ온스타일·SK스토아·KT알파 등은 '라이브커머스'를 기반으로 이커머스 시장 공략에 나섰다.
새로운 시장도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유통망이 막힌 명품 제조사들이 이커머스에 물건을 풀기 시작했다. 머스트잇·트렌비·발란 등 신규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이 물량을 빠르게 받아내며 시장의 숨은 강자로 떠올랐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 트렌드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진화시켰다. 당근마켓은 동네를 하나로 묶는다는 '발상의 힘' 하나만으로 3조 대어로 성장했다. 번개장터는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면서 소비자 이목을 사로잡았다.
불 붙는 '상장 레이스'…이제는 내실 싸움
내년 상반기 이커머스 시장 경쟁의 관전 포인트는 기업공개(IPO) 이슈다. SSG닷컴·마켓컬리·오아시스마켓 등 신선식품 플랫폼이 앞다퉈 증시에 진입한다. 이들은 '상장 1호'자리를 두고 각자의 강점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SSG닷컴은 이베이코리아와의 시너지 및 손익관리 역량을 강조한다. 마켓컬리는 공산품으로 범위를 넓히며 '종합 플랫폼'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은 규모는 작지만 새벽배송 플랫폼 중 유일한 흑자 구조라 기대받고 있다.
다크호스도 있다. SK그룹은 11번가를 늦어도 2023년까지 상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 전문가 송재승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송 CIO는 맥쿼리·도이치뱅크 등 주요 투자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11번가는 파주 물류센터를 확보하는 등 역량 강화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규모 성장을 위해 타 이커머스 플랫폼을 인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상장 레이스' 마무리 이후로는 내실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커머스 시장에는 아직 절대강자가 없다. 네이버·쿠팡·신세계 각각의 시장 점유율은 10%대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점유율 30%의 벽을 깨는 업체가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서비스 질 개선, 상품기획자(MD) 역량 강화 등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 위한 투자금 유치 경쟁도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이커머스 시장에 많은 주요 플랫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신규 플랫폼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고객 뺏기 경쟁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배송 등 서비스의 질이 대부분 상향평준화돼있는 만큼, 결국 단독 상품이나 할인 등 커머스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요소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킨게임 계속된다…도태되는 플랫폼 나올까
이들 플랫폼이 모두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서다. 최근 클라우드 솔루션 기업 세일스포스가 발표한 글로벌 디지털 커머스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52% 줄었다. 올해 연간 성장률도 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지역 이커머스 시장의 내년 성장률은 10%대 초반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이커머스 플랫폼의 '적자 구조'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쿠팡은 올해 3분기에만 3735억원의 적자를 냈다. 연간 적자는 1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컬리는 5년째 영업손실 폭이 확대되며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SSG닷컴 역시 투자의 영향으로 손실 폭이 확대됐다. 흑자를 이어오던 11번가마저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격화된 지난해부터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결국 누가 먼저 쓰러질 지를 두고 겨루는 치킨게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내년 이후 도태되는 플랫폼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이커머스 시장의 엄청난 성장세가 투자금을 유입시켜왔다. 때문에 전략이 불확실한 플랫폼도 투자금을 얻어 무리 없이 운영됐다. 하지만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경우 타 플랫폼과 차별화된 강점이 없는 플랫폼이 불리해진다. 자연스럽게 자금 흐름이 악화되며 무너지는 플랫폼이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도태되는 플랫폼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수년 동안 계속 나왔었지만, 시장 성장세가 매우 높았던 덕분에 어떻게든 투자금을 끌어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며 "하지만 시장 구조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지금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자생력을 잃고 타 플랫폼에게 흡수되거나, 무너지는 플랫폼이 이제는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댓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