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 쇼핑을 한다는 개념이 생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품을 보지도 않고, 사진만 보고 물건을 사는 걸 어떻게 믿냐는 사람도 많았죠. 지금은 국내 전체 쇼핑의 절반을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백화점에서 팔던 제품을 온라인에서 판다고 자랑했지만, 이제는 백화점이 직접 온라인몰을 열고 매장 제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독특한 문화도 있습니다. 바로 '묻지마 반품'입니다. 온라인 쇼핑은 제품을 보지 못한 상태로 구매하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옷이라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거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자기기라면 초기 불량이나 흠집 등의 하자가 나올 수 있죠. 과일이나 육류 등 상할 수 있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에 갖는 불만과 불신을 줄이기 위해 이커머스 업체들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반품과 환불의 허들을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구매해 보고, 별로면 즉시 환불해 주겠다는 거였죠. 수익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지만 당장 파이를 키워야만 했던 기업들로서는 이용자 수를 늘리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정책이었죠.
그래서 상당수 이커머스 업체들은 반품·환불 규정을 상당히 너그럽게 책정합니다. '웬만하면 해 주자'가 이들의 모토입니다. 이러다보니 반품률은 매년 높아집니다. 여러 제품을 구매한 뒤 마음에 드는 1~2개만 남기고 반품하는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특히 패션 카테고리의 경우 반품률이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팔린 옷 두 벌 중 한 벌은 회사로 되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반품 과정이 비연속적이고 기간도 길다는 것도 이커머스 업체들이 '묻지마 반품'을 택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자가 있는 제품을 갖고 매장으로 가 서로 하자를 확인한 뒤 반품해 주는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구매 제품은 이 과정에 '택배'가 끼어들죠. 짧으면 3일에서 길면 일주일 이상이 소요됩니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 불만은 높아집니다. 차라리 회사가 반품 제품 처리 비용을 떠안는 게 낫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기업들이 반품 처리에 들인 비용이 무려 912조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반품이 쉬워지고 일상화되면서 이를 악용하는 '반품 갑질' 사례도 늘어났습니다. 과일이나 육류, 채소 등 신선식품을 구매한 뒤 신선도가 떨어진다며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들은 신선식품의 반품 요구가 들어올 경우 제품을 회수하지 않습니다. 회수 과정에서 또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회수를 해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를 악용해 신선식품을 반품한 뒤 회수하지 않은 식품은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품 가능 기간을 이용한 '릴레이 반품'도 종종 나타나는 사례입니다. 아동복 등 의류를 구매해 입다가 반품 가능 기간 내에 환불받은 뒤 다른 의류를 구매하는 경우, 책을 구매해 빠르게 읽은 뒤 반품하고 다른 책을 또 구매하는 경우죠. 최근에는 애플 아이패드의 동기화 기능을 적극 활용, 주기적으로 환불-재구매를 이어가며 새 아이패드를 받아가는 케이스도 있다고 합니다.
반품 갑질이 심화되면 '반품 범죄'로 이어집니다. 구매한 제품을 환불받으면서 상자에 다른 제품을 넣거나 제품을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식으로 부당 이익을 취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수십만원짜리 액션캠을 구매한 뒤 제품은 빼돌리고 건전지를 채워 무게를 맞춘 후 반품한 사례, 70만원짜리 낚시대와 6만원짜리 낚시대를 동시에 구매한 뒤 70만원짜리 낚시대 케이스에 6만원짜리 낚시대를 넣어 환불받는 사례 등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기업이 '반품비'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반품 비용을 높게 책정하는 해외직구 플랫폼들에서 이런 사례가 많이 나왔죠. 2만5600원짜리 블루투스 이어폰의 반품 비용을 30만원으로 책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품질 불량이 의심되는 제품에 반품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에 지난 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 박경훈 트렌비 대표, 최형록 발란 대표가 불려나와 과도한 반품비 책정에 대해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 많은 '반품' 제품들은 어떻게 될까요. 식품류의 경우 앞서 설명한 것처럼 회수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회수하더라도 재판매는 어렵습니다. 상태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식품류는 대체로 폐기 수순을 밟습니다.
공산품의 경우 상대적으로 재판매가 수월합니다. 겉박스가 훼손됐을 경우 박스 훼손 제품으로 재판매하거나 박스만 교체한 뒤 새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한두 차례 사용된 전자제품이나 가전의 경우에는 '리퍼'의 길을 걷습니다. 초기 불량이 있었던 제품은 수리 후 가격을 낮춰 리퍼 제품으로 분류돼 따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쿠팡의 경우 아예 새 상품 페이지에 동일 상품의 리퍼·훼손 상품을 함께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체 쇼핑몰에서 판매되지 않았거나 물량이 너무 많은 경우엔 '리퍼 전문몰'로 갑니다. 이미 온·오프라인에 다양한 리퍼 전문몰들이 운영 중입니다. 예전에는 주로 가전·가구를 집중적으로 판매했지만 최근에는 생활용품이나 소품까지 판매하는 등 '리퍼 상품'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묻지마 반품'은 더 늘어날 겁니다. 소비자는 더 쉽고 편한 쇼핑을 원하고, 판매자는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라도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손실로 직결되는 반품률을 줄이는 건 기업들의 중요한 숙제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AI 기술을 이용해 소비자에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하고 상세 페이지를 자세하게 제공하는 등 소비자가 반품하지 않을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쉬운 반품보다 좋은 건, 반품하지 않아도 되는 만족스러운 상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