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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정육각은 그렇게 초록마을 이장이 됐다

  • 2022.03.04(금) 06:50

마켓컬리·바로고 등 쟁쟁한 라이벌 제쳐
인수 명분·시너지, 경쟁사보다 더 강해
유기농 확장에 지역 퀵커머스 가능성까지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대상그룹의 친환경·유기농 브랜드 '초록마을'의 새 이장이 정해졌습니다. 2016년 설립된 축산물 온라인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대상홀딩스와 정육각은 세부 사안 조율 후 이달 중순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매각 대금은 1000억~1500억원 안팎이 예상됩니다. 이 금액은 대상그룹의 경영권 승계 재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의외의 결말입니다. 당초 업계가 예상한 초록마을의 새 주인은 마켓컬리나 바로고였습니다. 양사 모두 초록마을을 인수할 명분이 충분했으니까요. 마켓컬리는 신선식품이 주력인 만큼 초록마을과 시너지를 낼 수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해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었죠. 바로고는 배달대행 외 영역으로의 진출 의지가 강했습니다. 이들 외에는 이마트에브리데이 등이 다크호스로 꼽혔습니다. 정육각은 '참전'에 의의를 두는 후보였습니다.▷관련기사 : 후끈 달아오른 '초록마을' 이장 쟁탈전(2월 26일)

경쟁사들은 자금력도 더 강했습니다. 마켓컬리는 지난해 12월 프리IPO(상장전 투자유치)로 2500억원을 조달한 바 있습니다. 바로고는 인수합병(M&A)을 목표로 지난해 1500억원의 투자를 받아냈고요. 이마트에브리데이에게는 신세계그룹이라는 뒷배가 있습니다. 반면 정육각은 누적 투자금이 700억원 가량인 신생 스타트업입니다. 그럼에도 투자자를 설득하면서까지 초록마을을 가져갔죠. 어떻게 보면 다소 무리를 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초록마을이 스타트업 '정육각'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정육각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정육각은 도축 4일내 신선육을 새벽·당일배송합니다. 유통경로 단축으로 비용을 줄였지만 단가가 높습니다. 때문에 아직 서울 강남·수도권 고소득 지역을 주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초록마을과 비슷합니다. 유기농이 주력인 초록마을도 고소득 지역에 매장이 많으니까요. 정육각이 초록마을을 인수하면 주력 시장에 판매·물류 기능이 있는 거점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선식품이라는 새 카테고리는 덤이고요.

반면 마켓컬리는 이미 신선식품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초록마을 인수의 진짜 목표는 오프라인 매장이었죠. 마켓컬리가 초록마을을 품었다면 온·오프라인 거대 신선식품 플랫폼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비슷한 구조에 규모가 작은 상장 경쟁사 오아시스마켓을 압도할 수 있었겠죠. 다만 수익성 개선이 당면 과제인 마켓컬리가 이 정도만을 위해 막대한 지출을 감수할 여력은 없습니다. 매장 수 증가 외 효과를 얻기 어려운 이마트에브리데이는 마켓컬리보다도 관심이 없었을 거고요.

바로고는 어떨까요. 바로고는 퀵커머스 서비스 '텐고' 등 신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텐고가 바로고가 초록마을에 관심을 가진 이유였을 겁니다. 매장을 퀵커머스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경우 유기농 전문이라는 초록마을의 이미지와 고소득 지역 위주 매장 배치가 걸림돌입니다. 신선식품이 주력이 아닌 바로고가 이런 약점까지 감수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스스로 정한 선보다 가격이 비싸진다면 대안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죠.

게다가 초록마을은 현재 실적도 좋지 않습니다. 지난 2018년부터 적자가 이어지고 있죠.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도 어렵습니다. 생산자가 적은 유기농 제품 특성상 중간 유통업자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인데요. 이 와중에 이커머스는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식품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초록마을의 이커머스 역량은 이에 대응하기에 부족하고요.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내려면 인수 이후에도 초록마을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초록마을은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이것이 정육각이 초록마을 인수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속사정입니다. 정육각은 초록마을을 통해 기존 사업 강화와 상품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거점 지역이 비슷하니 수익성 개선도 수월할 것으로 분석했을 테고요. 절실한데다 확신까지 있으니 베팅도 과감해졌겠죠. '찍먹'에 가까운 마음으로 인수전에 뛰어든 경쟁사들은 가격이 오르면서 슬그머니 발을 뺐을 겁니다. 이를 고려하면 남은 인수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육각은 순조롭게 초록마을 이장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의 방향도 어느 정도 예상됩니다. 일단 그동안 해온 고급 축산물 온라인 유통 사업에 앞으로는 유기농 농산물이 더해지겠죠. 우리의 육식 생활을 '원스톱'으로 책임지는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고소득 지역에서는 영향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고요. 향후 매장 인근 지역에서 신선식품 퀵커머스 사업을 펼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정육각은 초록마을 인수전에서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과감하게 베팅해 성장 기회를 잡았고, 인지도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남은 과제는 운영입니다. 정육각은 앞으로 전국의 유기농 농가와 초록마을 가맹점주를 플랫폼 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정육각의 미래는 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정육각이 또 하나의 유니콘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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