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한때 볶음 라면을 사랑(?) 했던 사람입니다. 군 시절부터 애정을 키워왔습니다. '간짬뽕' 뽀글이를 통해 입문했죠.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아실 겁니다. 볶음 라면은 국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뒤처리가 엄청 편합니다. 눈치 보이는 이등병 시절 이보다 더 좋은 라면은 없습니다. 다른 식품과 조합하면 '베리에이션(variation)'도 어마 무시합니다. 참치를 넣으면 참치 볶음면이 되고요. '빅팜' 등 소시지를 으깨 넣으면 고기볶음면이 됩니다. 여기에 김도 부셔서 넣으면 안성맞춤이죠. 아, 벌써부터 군침이 돕니다.
제대를 해서도 제 볶음 라면 사랑은 이어졌습니다. 이때가 삼양식품의 '붉닭볶음면'이 인기를 끌던 시절입니다. 강한 매운맛이 유튜버들 사이서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죠. 그야말로 '불닭' 열풍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불닭볶음면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매운 맛에 약한 소위 '맵찔이'인 탓에 너무 매웠거든요. 그렇다고 간짬뽕을 계속 먹자니 군 시절이 떠올라 별로 찾지 않게 됐습니다. 대체재로 찾았던 것이 바로 팔도의 '불낙볶음면'이었습니다. 불판서 볶은 낙지의 '불 맛'이 콘셉트인 제품이었습니다.
불닭보다 덜 맵지만 은은한 불 맛이 제 입맛엔 딱 맞았습니다. 복학 후 불낙볶음면을 즐겨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은근히 마니아층도 많았죠. 꽤 오래전 일인데 아직 '불낙볶음면'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근 마트에 들렀다가 불낙볶음면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슈퍼와 편의점을 돌아봐도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없으니 괜히 더 먹고 싶은 게 사람 심린가 봅니다.
불낙볶음면에 대한 제 마지막 기억은 팔도와 삼양의 소송전입니다. 당시 불낙은 불닭과 표절 시비를 크게 벌였습니다. 사실 두 제품은 포장지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불낙을 불닭으로 착각해 구매하는 사람도 많았죠. 이 때문에 삼양은 팔도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팔도가 이겼습니다. '심미감과 디자인이 달라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 판결이었습니다. 물론 이를 두고 '뒷말'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팔도가 이 때문에 판매를 중단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종 이유에 대해선 딱히 얘기가 없었습니다. 궁금함에 제조사인 팔도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불낙볶음면이 사라진 것은 표절 시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팔도는 삼양과 껄끄러운 관계를 잘 풀었다고 합니다. 소송전이 단종에 결정적이진 않았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트렌드의 변화 탓이었다고 합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볶음면 열풍이 시들해진 겁니다. 이 때문에 불낙볶음면의 판매량도 계속 줄었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라면은 계속 트렌드가 바뀝니다. 한때는 흰 국물이 유행이었습니다. 팔도 꼬꼬면이 히트를 치자 유사 제품이 쏟아졌죠. 오뚜기 기스면, 삼양 나가사끼 짬뽕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흰 국물도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마라탕 열풍에 다시 빨간 국물의 시대가 왔죠. 이후 유행을 탄 것이 매운 볶음 라면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프리미엄 짜장·짬뽕 라면이 등장하면서 자리를 내주게 됐습니다. 시대에 따라 소비자 입맛도 변한 겁니다.
그래서 팔도는 불낙볶음면의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라면은 간판 제품이 아니고선 트렌드 변화를 피하기 힘듭니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수입니다. 이는 라면 업계의 숙명입니다. 철마다 업계의 '미투 제품'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 들어올 때 함께 노를 저어야 하니까요. 물론 이를 표절이라고 보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불낙도 이를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재판에 이겼음에도 '짝퉁'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낙볶음면은 많은 마나아층을 형성했던 제품입니다. 아직 불낙이 그리운 소비자도 많은가 봅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아직 불낙을 먹고싶다 싶다는 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낙은 불낙만의 맛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불낙볶음면은 불닭에 가려져 단종을 맛 본 비운의 라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불닭볶음면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고 출시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죠.
현재 불낙볶음면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몇 년 전에는 컵라면 제품도 팔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단종된 상태입니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일부 제품은 과거 몇 년 전 올라갔던 제품들입니다. 지금은 구매할 수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관련 제품 재출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게 팔도의 설명입니다. 대신 다른 신제품 개발에 역량이 집중된 상태라고 합니다.
현재 라면 업계의 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신제품을 안착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각 라면마다 '터줏대감'이 하나씩 있기 때문입니다. 빨간 국물은 신라면, 짜장은 짜파게티, 볶음면은 불닭볶음면 등 각자 대명사가 있습니다. '스테디셀러'들이 각 분야를 꽉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같은 콘셉트로는 시장 진입이 힘듭니다. 업계가 계속해서 '새로운 콘셉트'를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대표적으로 팔도는 '맵지 않은 비빔면' 등을 밀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아직 강자가 없으니까요.
불낙볶음면의 숨은 뒷 이야기들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추석 연휴가 한창입니다. 기름진 명절 음식을 먹다 보면 매콤한 볶음 라면이 당기기도 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볶음 라면을 맛보려고 합니다. 물론 참치와 소시지 김가루도 함께입니다. 앞으로의 라면 트렌드는 또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볶음 라면이 다시 유행처럼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즐거운 명절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