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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개미의 반란' 현대백화점 주총이 남긴 것

  • 2023.02.10(금) 15:47

현대백화점, 지주사 전환 안건 부결돼
'캐시카우' 한무쇼핑 떼내는 데 주주 불만
향후 재추진 없다는 입장…다음 스텝 주목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그래픽=비즈니스워치

현대백화점이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지주사 전환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여유있는 통과를 자신했던 표결에서 35%가 넘는 반대표가 쏟아지며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 안건이 부결된 겁니다. 

일부 주주가 반대표를 던질 것은 예상됐지만 부결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안건이 통과되려면 전체 참석 주주의 66.7%가 동의를 해야 했는데요. 정지선 회장과 현대그린푸드, 현대A&I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이미 36.08%에 달합니다. 통과를 낙관할 만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표결 전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반대 의견을 냈고 외국인 기관 일부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혹시나' 하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8%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도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죠.

지주사 전환 계획 부결의 중심에는 '한무쇼핑'이 있습니다.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과 한국무역협회가 합작해 만든 현대백화점의 자회사입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목동점, 킨텍스점, 충청점 등 굵직한 곳을 한무쇼핑이 운영합니다. 김포 아울렛과 남양주 아울렛도 한무쇼핑의 몫입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전경/사진=비즈니스워치

현대백화점이 제안한 인적분할안에서는 한무쇼핑이 현대백화점을 떠나 지주회사인 현대백화점홀딩스의 자회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무쇼핑의 실적이 현대백화점에 영향을 줄 수 없게 됩니다. 

문제는 한무쇼핑이 현대백화점의 캐시카우라는 겁니다. 한무쇼핑은 2021년에만 매출 5911억원, 영업이익 1185억원을 올렸습니다. 이 해 현대백화점의 영업이익은 2644억원이었습니다. 

한무쇼핑은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매출 4677억원, 순이익 73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은 매출 3조4317억원, 순이익 1984억원을 냈습니다. 알짜 중의 알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한무쇼핑이 빠져나가면 상장사인 현대백화점의 실적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겠죠.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입니다. 지주사 전환 이후 현대백화점의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질 거라는 우려입니다. 

현대백화점이 한무쇼핑을 떼어 내려 한 데도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국내 기업을 인수할 때 지분 100%를 인수해야만 합니다. 한무쇼핑이 현대백화점의 자회사로 남을 경우 현대백화점홀딩스-현대백화점-한무쇼핑의 구조가 됩니다. 한무쇼핑이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되는 거죠. 한무쇼핑이 향후 투자 활동에 나서는 데 큰 제약이 걸립니다.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이 한무쇼핑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신성장 동력에 대해 주주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봅니다. 지난해 인수한 지누스를 새로운 캐시카우로 낙점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현대백화점의 지주사 전환 시도가 결국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역시 부결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전환 시도 초기부터 나왔던 지적입니다. 주주들에겐 큰 이익이 없는 반면 대주주는 인적분할에 이은 지분 취득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현대백화점도 이를 고려해 주주환원정책도 내놨었습니다.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현대백화점과 지주사가 자사주 6.6%를 매입해 소각하고 현금배당도 늘리겠다고 했죠. 하지만 주주들은 결국 '반대'에 표를 던졌습니다.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대기업의 지주사 전환이 무산된, '개미의 반란'이라 부를 만합니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지주사 재전환이나 인적분할을 다시 시도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같은 날 가결된 현대그린푸드의 지주사 전환만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 해서 현대백화점이 정지선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키우기 위한 작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겁니다. 전사적 역량을 동원한 이번 지주사 전환 계획이 부결된 것 역시 지분이 충분하지 못했던 데서 나온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의 다음 움직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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