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한 소년은 한라산을 오르며 산과 사랑에 빠졌다. 청년이 된 그는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제조해 팔다가 한국 1호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들었다. 중년이 된 후 그는 자신이 산에서 받은 것을 사회와 자연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사회 공헌 재단을 만들었고 환경 운동가로서 친환경 소재의 의류를 생산했다. 산악인이자 체육인으로, 그리고 경영인으로 살며 자연스럽게 스포츠 행정의 길까지 걷게 됐다. 바로 강태선 BYN블랙야크그룹 회장 겸 서울특별시체육회 회장의 이야기다.
70대 중반이 된 지금, 강 회장은 인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한국 체육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내년 1월 치러지는 대한체육회장 출마를 선택한 이유다. 지난 20일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 블랙야크 사옥에서 강 회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 소년의 산 사랑
강 회장은 1949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제주에는 어린 소년이 놀 만한 곳이 산과 바다 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학교 체육 수업 차 한라산 정상에 올랐던 소년은 산과 사랑에 빠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0년 동안 산을 올랐다.
20대가 된 그는 제주에서 회사를 다니며 계속 산에 올랐다. 겨울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서울에서 찾아온 등반가들과 어울리게 됐고 그때 상경의 꿈이 생겼다. 강 회장은 "서울에서 온 친구들이 서울에 산이 많다고 하더라"며 "직장생활로 고됐던 시기에 진짜 산이 많은지 확인하러 서울에 올라가보고 싶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무작정 올라온 서울에서 강 회장은 처음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제주에서 만났던 서울 등반가들의 장비를 눈여겨봤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시절만 해도 많은 등반가들이 해외 장비를 사용했다. 강 회장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장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수 장비를 고쳐 판매하기 위해 1973년 동진사를 차렸다. 종로5가 골목의 3평 남짓한 작은 등산용품 전문 가게에 불과했던 동진사가 바로 지금의 BYN블랙야크그룹의 모태다.
사업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강 회장은 "창업 초기에는 자본과 기술의 부족이 큰 어려움이었다"며 "외상으로 장비를 사간 사람들이 돈을 가져다 주리라 순진하게 믿고 쓴 맛을 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1992년 전국 국립공원과 주요 산에서 야영과 취사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 것은 강 회장의 경영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였다. '프로 자이언트'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주로 캠핑, 야영 장비를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때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1995년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사업 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아웃도어라는 용어조차 낯설던 시절, 블랙야크는 국내 1호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했다. 의류 비중을 크게 늘리고 투박했던 등산복에 디자인을 입혀 팔았다.
산, 사회, 환경
강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면서도 산에 올랐다. 국내뿐 아니라 히말라야에도 갔다. 고산 등반은 단순히 그의 취미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산을 오르면서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배웠다. 엄홍길 대장과 오은선 대장 등 산악인을 지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강 회장 스스로도 "히말라야 고산 등반하는 친구 중 블랙야크의 지원을 안 받은 곳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다.
이 경험을 바탕 삼아 2013년에는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비영리 재단 '블랙야크강태선나눔재단'과 '블랙야크강태선장학재단'까지 설립했다. 이들 재단은 산악인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환경 역시 강 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쏟는 분야다. 강 회장은 "나는 평생 체육인이자 평생 기업인, 평생 자연 보호 운동가"라며 "산을 많이 다니면서 진 신세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강 회장은 70대가 된 지금도 연 2회씩 히말라야에 쓰레기를 주우러 간다. 중국 사막에 나무도 심었다. 또 블랙야크는 페트병으로 옷을 만들어 파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블랙야크는 원재료의 23%를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이런 과정에서 강 회장은 자연스럽게 스포츠 행정의 길에도 발을 들여놓게 됐다. 강 회장은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통합과 국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기업 경영을 통해 얻은 경험과 자원을 스포츠 발전에도 공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을 거쳐 지난해부터는 제35대 서울시체육회장을 지내고 있다.
대통령 아닌 봉사직
강 회장은 최근 대한체육회 회장 출마까지 선언했다. 대한체육회는 60여 개 종목 단체, 17개 시도 체육회, 225개 시군구체육회를 산하에 두고 예산을 배분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단체다. 올해 예산만 4000억원이 넘는다. 일각에서는 대한체육회 회장을 '체육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 표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대한체육회 회장직이 철저히 국가와 체육계를 위해 봉사하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체육회는 서비스와 봉사를 하는 단체여야 하며 대한체육회 회장 역시 서비스직"이라며 "그런데 각 단체를 지배하려고 하다 보니 권력형이 되면서 협회를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문제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강 회장은 "'대한체육회를 필요로 하는 회장'이 아니라 '대한체육회가 필요로 하는 회장'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회장이 직접 대한체육회장 출마를 결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오랜 시간 체육인으로 살아왔다. 강 회장은 "대한체육회장 출마는 오랜 시간 체육계를 지켜보며 느꼈던 책임감과 변화의 필요성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체육인일뿐만 아니라 체육 행정에 정통한 경영인이다. 이런 종합적인 경력은 다른 후보들에게선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강 회장은 '스포츠도 경영'이라는 모토를 내세운다. 공약으로는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선수와 지도자의 처우 개선 등을 내세운다.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스포츠 환경 조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힘을 주는 것은 대한체육회의 투명성과 신뢰 회복이다. 그는 "내 경영인으로서의 노하우를 접목해 체육 행정을 보다 전문화, 투명화하고 시스템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서울시체육회장으로 일하며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 개혁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강 회장은 벌써 70대 중반에 들어섰다. 그는 한국 체육계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장은 4년의 임기 후 연임이 가능하지만 그는 연임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4년의 '경영'으로 대한체육회의 시스템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체육회장은 더 이상 군림하거나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원하고 떠받드는 자리여야 한다"며 "4년의 봉사를 통해 기업형의 선진 시스템을 확실히 만들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