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대기업의 부진
패션업계는 올해 내수 부진과 기후 영향으로 이중고를 겪었다. 고물가 탓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의류 제품에 대한 소비가 크게 줄었다. 지갑이 얇아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 중 하나가 의류 소비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상기후였다. 올 7월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여름철 의류 판매가 부진했다. 9월까지 이어진 가을철 이상고온 현상 역시 패션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9월은 통상 단가가 높은 가을·겨울 시즌 제품들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실적이 회복되는 시기지만 올해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판매가 부진했다. 실제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의복 소매판매액(불변지수·2020=100)은 1분기 108.3, 2분기 121.5, 3분기 96.4 등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4.6%, 5.6%, 4.3%씩 감소했다.
패션 대기업들의 수익성도 크게 악화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삼성패션)의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3.9% 줄었다. 한섬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의 1~3분기 영업이익도 각각 23.5%, 38.2%씩 감소했다. 같은 기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코오롱FnC)의 영업이익은 71.9%나 급감했다.
이런 분위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와 내년 패션 시장 규모는 1~2%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온라인·스포츠 성장
하지만 모든 패션업체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낸 것은 아니다. '마뗑킴'·'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마르디 메크르디'와 같이 온라인 기반으로 성장한 패션 브랜드들은 올해도 급격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에 오랜만에 증시 문을 두드리는 패션 기업들도 생겼다. '락피쉬 웨더웨어', '젠나'를 운영하는 에이유브랜즈는 지난 10월 코스닥시장본부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에이유브랜즈는 2013년부터 '락피쉬'와 젠나의 한국 사업을 벌이던 에이유커머스로부터 물적분할된 회사로, 올해 락피쉬와 젠나의 영국 본사를 인수했다. 마르디 메크르디를 운영하는 피스피스스튜디오도 2026년을 목표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커머스의 패션 시장 침투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무신사, 에이블리, 지그재그, 29cm. W컨셉과 같은 패션 전문몰의 등장 후 의류, 신발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크게 늘면서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복 판매의 온라인 쇼핑 점유율은 2017년 16.3%에서 지난해 23.8%로 증가했다. 신발 및 가방 판매의 온라인 쇼핑 점유율 역시 2017년 21.3%에서 지난해 30.6%로 급증했다. 올해는 이 비중이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 패션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도 늘고 있다. '중국판 유니클로'로 불리는 온라인 패션플랫폼 쉬인은 올해 4월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한국 사업을 본격화 했다. 마켓컬리와 같은 이커머스도 패션 사업을 확대 중이다.
이와 함께 올해 스포츠 브랜드와 애슬레저 브랜드의 성장세도 돋보였다. 이랜드월드가 전개하는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는 올해 처음으로 국내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젝시믹스'는 올 1~3분기 매출액이 18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8%나 늘었다. 에코마케팅의 '안다르' 역시 1~3분기 매출액이 174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6% 성장했다.
바다 건너
올해는 특히 해외 시장으로 뛰어드는 패션 기업들이 많았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 하고 있는 만큼 해외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최근 K팝 등 한류의 영향으로 K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코오롱FnC는 지난달 골프웨어 브랜드 '지포어'의 미국 본사와 중국·일본의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또 '코오롱스포츠'는 지난 8월 일본 최대 종합상사 이토추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코오롱FnC의 디자이너 브랜드 '아카이브앱크'도 올해 태국 백화점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F&F는 지난 7월 중국 등 아시아 11개국의 디스커버리 라이선스를 추가로 획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5월 '할리데이비슨'의 라이선스를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 이 라이선스에는 아시아 주요 지역의 홀세일 권리가 포함돼 있다. 삼성패션은 지난 여름 새롭게 선보인 여성복 브랜드 '앙개'를 통해 해외 진출에 나섰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주요 편집숍을 시작으로 유통망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한섬은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한섬의 캐주얼 브랜드 '시스템·시스템옴므'은 지난 6월 파리 마레 지구에 첫 해외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지난 7월에는 프랑스의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에도 입점했다.
대기업들도 K패션 수출 창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 신규 플랫폼 사업 '더현대 글로벌'을 시작했다. 더현대 글로벌은 지난 5~7월, 10~12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도쿄 파르코백화점에서 K패션을 소개하는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K패션 수출 지원 B2B 플랫폼 '하이퍼그라운드'를 통해 최근 오사카 한큐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8월 면세업계 최초로 패션 B2B 플랫폼 '카츠'를 열었다. 또 최근 리뉴얼 오픈한 도쿄의 동경긴자점에 무신사 매장을 입점시켰다. 이 매장에서는 롯데면세점과 무신사가 함께 한국 패션 브랜드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