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패션은 K팝, K드라마에 이은 K콘텐츠 열풍을 이어나갈 차기 주자로 꼽힌다. 해외 시장에서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중소 브랜드 입장에서 해외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형 유통사와 플랫폼 기업들이 수출 사업에 잇달아 뛰어드는 이유다. 그 시작은 '당연히' 아시아 패션의 중심지 일본이다. K패션은 또다른 BTS가 될 수있을까.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를 꿈꾸는 K패션 플랫폼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편집자 주]
온라인 브랜드 등용문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 신규 플랫폼 사업 '더현대 글로벌'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더현대 글로벌은 한국 토종 패션 브랜드와 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중소‧중견 브랜드의 수출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다.
현대백화점이 더현대 글로벌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더현대 서울의 성공에 있다. 더현대 서울은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끄는 K패션 브랜드를 대거 소개하며 K패션 브랜드의 오프라인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더현대 서울에서 성장한 이런 패션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니즈가 바로 해외 진출이었다.
더현대 글로벌은 일본 시장에 주목했다. 일본 대형 유통 그룹 파르코와 업무협약을 맺은 뒤 지난 5~7월 일본 도쿄 파르코 시부야점에서 K패션을 소개하는 1차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1차 팝업스토어가 성공적으로 치러지자 지난 10월부터 이달 15일까지 2차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더현대 글로벌 사업을 맡고 있는 박동용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패션사업부 책임은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의 경우 외국인 매출 비중이 40%에 달한다"며 "브랜드 측에서 해외에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문의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물론 이미 한국 패션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플랫폼들이 존재한다. 다만 이런 플랫폼들은 대부분 브랜드들이 해외 바이어, 거래선을 마련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B2B 플랫폼이다. 더현대 글로벌은 이런 B2B 형태가 아닌, 해외에서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직접 운영할 기회를 제공한다.
박 책임은 "패션 브랜드들은 해외 거래선을 획득하기에 앞서 해외 시장에 대한 검증, 브랜딩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위해 필요한 홀세일 계약, 총판 계약, 편집숍 입점 등을 브랜드가 직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같이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열어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현대 글로벌이 많은 해외 시장 중에서도 일본을 첫번째 무대로 낙점한 것은 대다수의 브랜드가 일본 진출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패션 시장은 연간 약 100조원 규모에 달할 정도로 크다. 게다가 일본 리테일 시장에서도 더현대 서울의 사업 모델에 관심이 높다. 파르코의 모회사 J.프론트리테일링도 더현대 서울을 살펴봤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반짝 인기 아니다
파르코에서 열린 더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는 운영 기간 동안 모든 브랜드를 한 자리에서 한번에 소개하는 게 아니라, 각 브랜드의 단독 매장을 5일~2주씩 순차적으로 운영한 것이 특징이다. 1차에서는 노이스, 이미스, 마뗑킴, 미스치프 등 이미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11개 한국 패션 브랜드를 소개했다. 2차에서는 파르코 측의 요구사항들을 반영해 앤더슨벨, 아비에무아, 세터, 쿠어 등으로 팝업스토어를 꾸렸다. 2차에 참여한 브랜드 중 다수는 해외에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한 브랜드다.
일본 현지의 반응도 뜨거웠다. 박 책임은 "일본 고객들은 과감하고 특징이 강한 옷을 좋아하는데 한국 패션 브랜드는 K팝 등 한국 아티스트들이 입는 옷을 잘 구현해 인기가 높다"며 "일본처럼 디자이너 브랜드 특유의 감성을 갖췄으면서도 보다 대중적인 디자인이라는 점, 합리적인 가격대를 갖췄다는 점도 인기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차 팝업스토어의 경우 유명한 브랜드들이 참여한 만큼 목표 매출의 150%를 넘는 실적을 거뒀다. 최근 진행된 2차 팝업스토어 역시 상대적으로 해외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들이었지만 구매 전환율, 재구매율이 상당히 높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K패션의 인기가 한류에 편승한 '반짝 인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박 책임은 "파르코에서 뛰어난 퀄리티와 캐릭터성을 보유한 한국 패션 브랜드가 넘쳐난다고 하더라"라며 "한국 패션 브랜드가 자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사업 확대
더현대 글로벌은 이 같은 팝업스토어를 내년에도 일본에서 운영할 예정이다. 또 팝업스토어 외에도 정규 매장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일본 시장에 한국 브랜드를 소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브랜드가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스토어, 정규 매장을 거친 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일본 시장까지 진출하는 시스템이 가능할 수 있다.
박 책임은 "브랜드의 가치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상시 운용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며 "한번의 팝업이 아니라 일본 시장에 브랜드를 다양하게 알릴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춰 진정한 브랜드 빌더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더현대 글로벌의 사업 모델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팝업스토어가 해외에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몇몇 해외 기업들이 더현대 글로벌 입점을 제안하기도 했다. 더현대 글로벌은 브랜드사가 너무 많은 비용 부담을 갖지 않으면서도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지역으로의 추가 진출을 검토 중이다.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대백화점의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70~80년대, 일본 문화가 해외에 크게 알려지면서 여러 패션 브랜드가 해외 진출에 성공했고 백화점이 그 뒤를 따른 사례가 있다. 한국은 이 사례의 시작 단계에 있다는 것이 현대백화점의 판단이다.
박 책임은 "한국은 문화,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됐고 글로벌 팬덤도 존재한다"며 "패션 등 소비재로 팬덤이 확산되고 유통이 따라 나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해외 진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고 지금 더현대 글로벌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