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업계 3위 세븐일레븐이 CU와 GS25를 추격하기 위해 '대기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식품 개발 노하우와 브랜드 파워를 동시에 갖춘 식품 대기업과 손잡고 만든 간편식으로 경쟁사들의 PB 파워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원조 편의점' 부활할까
세븐일레븐은 전세계 1위 편의점 브랜드다. 역사가 100여년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1989년 서울 올림픽선수촌에 1호점을 내며 '한국 최초의 편의점' 타이틀을 얻었다. 여러모로 '편의점의 원조'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국내 편의점 경쟁이 가속화된 2000년대 이후 세븐일레븐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국내파' CU와 GS25에 선두를 빼앗겼고 아래로는 이마트24의 추격을 받아야 했다. 바이더웨이와 미니스톱 등 중소 브랜드 쟁탈전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몸집을 불렸지만 기대했던 시너지는 나지 않았다. 1만4000개가 넘었던 점포 수도 1만2000개까지 줄었다. 그 사이 CU와 GS25는 점포 수가 1만8000개를 돌파했다. 어느새 업계에선 편의점 업계 구도를 '3대 편의점'이 아닌 '투톱 체제'로 부르기 시작했다.
적자도 길었다. 2021년 15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3년간 누적 적자폭만 2500억원이 넘는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븐일레븐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수십년 간 꾸준히 늘려왔던 점포 수가 역행하기 시작했다. 2023년과 지난해 2년 간 2000개 이상의 점포를 줄였다.
세븐일레븐의 경쟁력 약화는 NB(제조업체 브랜드)에서 PB(편의점 자체 브랜드)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편의점업계의 트렌드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다. 전국에 편의점이 4만개를 넘어서면서 '접근성'은 더이상 강점이 되지 못했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NB 대신 '우리 브랜드'에서만 파는 PB가 매출을 견인하기 시작했다. CU의 '연세우유 크림빵', GS25의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 등 경쟁사들이 히트작을 내놓는 동안 세븐일레븐은 한 발 뒤에서 양 사의 경쟁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PB가 편의점의 주류가 되면서 새로움은 익숙함이 됐다. 소비자들도 유명 셰프나 연예인의 이름을 건 제품에 질리기 시작했다. 기존 제품과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유명인의 이름이 붙으면 가격이 오른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기업표 제품'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개선됐다. 식품 대기업들이 내놓는 제품들이 명인의 손맛 못지 않다는 걸 소비자들이 느끼면서다. 맛을 충족시키면서 가격은 '수제'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렴하다. 대기업이 내놓은 간편식을 '식품공학의 정수', '전국의 석·박사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 낸 맛'으로 부르며 호평하는 시대가 됐다. 대 가성비의 시대에 맛과 가격을 모두 보장하는 '대기업표 간편식'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식품공학의 힘
세븐일레븐이 대기업과의 협업을 선택한 건 이런 흐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은 CU나 GS25에 비해 간편식·신선식품 카테고리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체개발 브랜드로 연이은 흥행을 거두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은 경쟁사 PB에 맞불을 놓기 어렵다. 하지만 편의점 PB 이상으로 신뢰도를 확보한 대기업 브랜드가 함께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세븐일레븐이 '대기업 간편식'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한 건 지난 8월이다. 동원F&B와 함께 '총동원' 간편식 시리즈 7종을 선보였다. 동원F&B의 대표 육가공 브랜드인 그릴리와 동원참치를 활용한 간편식을 내놨다. 반응도 좋았다. 출시 2주 만에 상품군 매출이 최대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8월 세븐일레븐이 실시한 경영주 시식 평가에서도 대기업 콜라보 상품이 높은 선호도와 신뢰도를 기록했다는 설명이다.
'총동원' 시리즈의 흥행에 힘입어 이달 중순에는 CJ제일제당과 함께 '맛제일' 시리즈를 출시했다. 백설 양념으로 숙성한 오리불고기와 비비고 왕교자, 비비고 동그랑땡과 스모크 후랑크, 행복한콩 두부튀김 등 CJ제일제당의 식품을 총동원한 도시락이 대표 메뉴다. CJ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인 '스팸'을 넣은 파스타도 내놨다.
세븐일레븐의 대기업 콜라보 간편식은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다. '총동원'의 그릴리직화후랑크&제육도시락은 5500원, 그릴리직화소시지파스타는 4900원으로 점심 한 끼로는 더할나위 없는 가격대다. 리챔 반 조각이 통째로 들어 있는 '더커진고추참치삼각김밥'도 1700원이다. '맛제일'에서는 '오리불고기&왕교자 도시락'이 5500원, '스팸아라비아따파스타'가 4900원이다. 외식 물가 부담이 극심해지는 '런치플레이션'을 피해 '저렴한 한 끼'를 찾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가격 구성이다.
대기업과의 콜라보는 세븐일레븐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검증된 레시피와 재료로 만든 간편식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로 브랜드를 홍보할 필요 없이 제품명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효과도 있다. 스팸이나 동원참치가 대표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전국에 1만2000개 이상의 점포를 갖고 있는 편의점에서 자사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향후 제품 확장에도 유리하다. 수십개 이상의 브랜드와 수백개의 상품군을 보유한 만큼 신제품 개발 부담도 적다. 대량생산·공급 역시 수월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들어 대기업 냉동·냉장 간편식의 품질이 크게 올라오기 시작했다"며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면서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 경쟁력은 유지한 만큼 식품 대기업과의 협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