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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구의 인사 실험은 약일까, 독일까

  • 2014.12.09(화) 15:06

옛 한일 출신 행장 후보자들 유임, 상처 공식화 효과
겉으론 조직 화합이지만 사실상 분할 통치 가능성도

우리은행 이동건 수석 부행장과 김승규 부행장이 모두 유임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김승규 부행장은 이광구 우리은행장 내정자와 함께 행장 후보에 올라 행장후보추천위원회의 면접을 봤다. 이 수석 부행장은 이광구 부행장이 행장에 오르기 전엔 선임이었다. 실제 행장 자리를 두고 겨루진 않았지만 처음 금융당국에서 이순우 현 행장과 함께 차기 행장 후보자를 추려서 청와대에 보고했던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둘 다 옛 한일은행 출신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안배를 통한 조직 화합에 초점을 둔 인사로 해석된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에 이어 이광구 내정자까지 옛 상업은행 출신이 잇따라 행장 자리를 차지한 데 따른 한일 출신들의 반발을 고려했다.


전반적으로 변화나 혁신보단 안정에 초점을 뒀지만, 이것 자체가 인사 실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실제 조직안정과 효율성 측면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이동건 수석 부행장은 이순우 행장과 손발을 맞췄던 인물이다. 수석 부행장이 우리은행서 갖는 위치를 봐도 마찬가지다. 수석 부행장은 은행장과 함께 은행 경영을 총괄한다. 이종휘 전 행장과 이순우 행장 모두 수석 부행장을 하다 은행장에 올랐다. 그만큼 비중 있는 자리다.


이 수석 부행장은 1956년생으로 1957년생인 이광구 내정자보다 한 살 많다. 이 내정자가 수석 부행장으로 모셨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애초 의도했던 조직의 화합보다는 오히려 분란의 씨앗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수석 부행장을 유임시킴으로써 상업 대 한일이라는 채널 관리를 공식화한 측면도 있다. 옛 한일 출신들이 이 수석 부행장을 중심으로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함께 행장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을 유임시킨 것은 의외였다"며 "자신감의 표현일수도, 화합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은행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은행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조직이 최악엔 사실상 쪼개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수석 부행장 자리는 행장 입장에서 보면 민감한 자리다. 과거 많은 은행이 수석 부행장 제도를 폐지했던 것도 권력 분산을 막기 위함이었다.

우리은행의 경우 과거 외부 출신이 행장을 맡거나, 무리 없이 한일과 상업이 번갈아 은행장을 맡았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행장 선임 과정에서 채널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얘기는 달라졌다. 이런 때일수록 탕평과 신상필벌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은행을 끌고 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친정체제 구축도 그래서 필요하다. 한일 출신의 수석 부행장을 유임시킨 것이 리더십과 조직안정 차원에서 반드시 득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내정자의 임기는 당국의 의중을 반영해 2년으로 제한됐다. 뭔가 해보려다가 관둬야 할 판이다. 이 내정자 입장에선 이른 시일 안에 조직을 추스르고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서금회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만큼 이광구 호의 색깔을 내기보다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인사를 단행했다. 이것이 실제 조직안정과 화합의 관점에서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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