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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우리은행의 불편한 동거

  • 2014.12.15(월) 10:11

이광구 내정자 외부 사무실서 집무

"왜 멀쩡한 은행 놔두고 외부에 사무실을 두죠?"

최근 만난 금융권 한 인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낙점된 이광구 내정자가 은행 본점이 아닌 외부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을 두고 한 질문이었는데요. 그리고는 이내 '알만하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더군요. 그동안 우리은행장 선임을 두고 벌어졌던 일들을 언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 내정자는 지난 5일 내정 이후 은행엔 발 한 짝도 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내정된 후 첫 월요일이었던 8일에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첫 출근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기다렸던 기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이죠.

이후 은행 밖에 집무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물론, 서금회 논란으로 뜨거웠던 만큼 한동안 언론 노출 없이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일 수도 있을 겁니다. 기자의 전화에도 양해를 구하는 짤막한 답문으로 대신합니다. 은행 인사부를 통해 직원들에게도 될 수 있으면 찾아오지 않도록 당부했다고 하는데요. 인사 시즌이니까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을 걱정해서 일 수도 있겠고요. 은행 임원 인사를 끝냈고, 지점장급과 직원, 그리고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어쩐지 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은행장 집무실에 앉아 있을 이순우 행장과 오버랩되면서 말이죠.

최근에 CEO를 뽑았던 KB금융지주의 사례를 볼까요. 지난 10월 29일 KB금융 이사회는 윤종규 회장을 회장 후보로 내정했는데요. 윤 회장은 바로 다음날부터 본점 7층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을 이용했습니다. 윤 회장은 공식 취임한 11월 21일까지 이 집무실에서 계열사와 은행 업무보고를 받고, 경영구상을 할 수 있었죠. 물론 회장 자리가 이미 공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행장 입장에서도 본점에 몇 평 남짓한 집무실 하나 만들어 주는 게 뭣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당분간 은행이나 계열사 업무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장 인사와 조직개편, 그리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는 당사자는 이순우 행장이 아니라 이 내정자입니다. 보고를 하든 업무협조를 하든 직원들이 이 내정자를 찾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 추운 겨울 날씨에 코트를 껴입고, 서류를 양팔에 끼고 이 내정자를 찾아가야 하는 은행 직원들도 안쓰럽습니다.

물론 이 행장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서금회 관련 여론몰이 논란에 맞선 투서논란 등 행장 선임 과정이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만들었으니까요. 한때는 같은 '상업은행' 출신으로 이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오르는데도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일 잘하는 선·후배 사이로 돈독했었다죠.

표현은 다소 우습지만, 우리나라 금융 판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겠느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후계양성 프로그램이 없기도 하거니와 있다고 해도 그런 프로그램이 작동할 틈이 없어 보입니다. 매년 인사시즌이 돌아오면 기존에 있는 CEO든 임원이든 끌어내리기 위해 각종 투서가 난무하고, 정치권이든 당국이든 힘센 곳으로 몰려들어 줄 대기 바쁜 게 현실이니까요. 이런 현실에서 글로벌 금융회사, 선진 금융회사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아무튼, 이런 어렵고 복잡미묘한 과정을 거쳐 새로 들어온 사람과, 또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날 사람. 기분 좋게 웃으며 얼굴을 맞대고 있긴 힘들어 보입니다. 이들의 불편한 동거, 이 내정자의 객지생활은 아직도 보름이나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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