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승인을 놓고 금융당국 내에서 변화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동안 노사합의를 통합승인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노사합의에 진통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계속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과의 협의가 해를 넘기고 일정이 자꾸 꼬여만 갔던 하나금융으로선 확실히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 통합승인신청서 제출과는 무관하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 일각에선 통합승인 신청서 제출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 금융당국 "마냥 기다릴 순 없다, 고민 중"
금융당국의 분위기는 지난 연말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여러 여건을 고려해 통합 승인신청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노사가 합의해서 신청서를 제출하면 좋겠지만, 외환은행 노조가 통합과 상관없는 정규직 전환 이슈를 들고 나와 지연시킨다면 계속 (노사합의를)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내부에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노조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모양이 좋다"면서도 "우리도 오래 기다릴 수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동안 전자 쪽에 무게를 실었다면 새해 들어 후자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로 해석된다. 아울러 신 위원장이 당시 '노조와의 숙려(熟慮) 기간'을 거론했던 점에 비춰보면 이미 그 기간을 줄 만큼 줬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하나금융, 통합승인 신청 강행?
그렇다면 하나금융이 노사합의 없이 통합승인신청서를 제출할까?
일단 하나금융의 공식 입장은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최선의 방법은 노조와 대화를 해서 같이 가는 것"이라며 "차선책으로 합의 없이 신청서를 제출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래도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하나금융 내부에선 당국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통합승인신청서를 제출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하나금융 그룹사 한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당국이 노사합의를 해 오라고 했기에 기다렸는데 당국이 신청서를 받아들여 준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해 강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30일 은행 합병기일을 올해 2월 1일에서 3월 1일로 한 달간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합병 주주총회도 오는 29일로 미뤘다. 올 3월이 임기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으로선 마지노선을 제시한 셈이다. 연임에는 무리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조기통합 성공으로 명분을 확실히 쥐고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합병 주주총회와 합병기일 등을 고려하면 신청서 제출을 더 늦추기도 어렵다.
하나금융이 당장 노조 반대를 무릅쓰고 통합승인신청서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국의 변화된 분위기는 노조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국이 노사합의를 강조하면서 노조에 힘이 실렸던 반면 이제 상황이 바뀌어 하나금융이 당국이라는 우군을 얻은 모양새다. 이를 계기로 지지부진했던 노사합의가 진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지난 연말 외환은행 노조는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되면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91%의 찬성표를 얻었다. 현재는 경영진에 대한 압박 카드로 이용되지만, 자칫 지주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쟁의행위 가능성도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