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았습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한 포화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요. 인터넷 전문은행이 카드사를 끼지 않는 결제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도 합니다. 핀테크 확산과 함께 다양한 결제서비스도 속속 나오고 있고요. 사실상 영역 구분이 사라지면서 카드사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기업계 카드사를 대표하는 삼성카드와 현대카드의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이라는 국내 굴지 그룹의 계열사이지만 점차 계열사로서의 입지는 쪼그라들고 찬밥신세로 전락하는 분위기인데요.
그렇다면 은행계 카드의 상황은 다를까요. 말하자면 모 회사인 은행과 업무 연관성이 높고, 체크카드가 활성화되면서 기업계 카드보다는 낫다는 입장인데요. 그런 이유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어려운 상황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6700억 원' 후폭풍 더 거세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한 후폭풍은 기업계보다 은행계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체크카드를 포함한 시장점유율 1, 2위인 신한카드와 국민카드의 매출 감소 폭이 더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금융당국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해 영세·중소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액은 약 67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반대로 그 액수만큼의 카드사 매출도 감소합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 전체 당기순이익 중에 일회성 이익을 뺀 경상적 이익은 1조 7852억 원입니다.
특히 영세가맹점의 체크카드 수수료는 0.5%로 낮아져 사실상 원가 이하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한카드는 이번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해 수익이 1500억 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다른 쪽의 비용을 줄여보고자 머리를 짜내보지만 이로 인해 줄일 수 있는 것은 많아 봤자 200억 원 정도라는 겁니다.
#"은행계, 살만하면 나오고 어려우면 들어가고"
그런데 이처럼 어렵다는 은행계 카드사들의 반응에 정부와 당국자들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거봐라, 그러기에 (은행에서) 왜 나왔어'라고 말하는 듯한데요.
정부 입장에선 부가서비스를 확대하면서 과당경쟁을 벌이는 카드사들이 좋게 보일 리는 없을 텐데요. 가뜩이나 가계부채로 골머리를 앓는 중인데, 카드사들까지 보태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은행계는 그동안 살만하면 나오고, 어려우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며 "기본적으로 은행계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도 말합니다.
#하나카드서 촉발한 분사 바람 "그때 인가하지 말았어야"
금융당국의 이런 반응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카드사태 이후 국민카드, 옛 외환카드(현 하나카드) 등이 모두 은행으로 복귀했고 이후 다시 은행 밖으로 나온 것은 지난 2009년 하나카드 분사를 시작으로 다시 촉발됐습니다.
당시 하나카드 인가를 담당했던 금융당국 전 관계자도 최근 사석에서 "당시 하나카드 인가를 내주지 말았어야 했다"고도 말하더군요. 하나카드 분사 이후 2011년 국민카드, 2013년 우리카드 등이 잇따라 떨어져나왔는데요. 리스크관리를 기반으로 하는 은행 안에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과당경쟁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하나카드 분사 당시 하나금융이 인가를 받기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주회사로부터 경기침체 혹은 카드 부실 등의 위기 발생 때 지주사 차원의 유동성 지원 등 백업에 대한 약속을 받은 후에야 인가를 내줬는데요. 특히 지난 2011년부터 분사를 추진했던 우리카드는 매번 금융당국의 반대로 좌절됐습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대책 연장 선상에서 카드 분사를 막아왔는데요. 아예 인가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으면서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당국은 버티다 버티다 결국 2013년 4월에야 인가를 내줬습니다.
#살만해 나왔는데 다시 어려워진 카드사
이러니 당국 안팎의 카드업에 대한 부정적 시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카드업은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집니다.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은 카카오뱅크가 카드사를 거치지 않고 가맹점과 소비자 간에 직접 송금 등의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가맹점주나 소비자에게 모두 이득을 가져다주니 앞으로 이런 서비스들이 확대될 여지는 커 보이는데요.
수신기능이 없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만 하는 카드사는 자금조달에 대한 리스크와 비용도 상당합니다. 지금은 워낙에 저금리이니 딴 나라 얘기 같지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금융전문가들은 앞으로 금융사는 'Profit(수익)'이 아니라 'Price(가격)'의 문제라고들 얘기합니다. 즉 비용을 줄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다시 은행 속으로?
은행계 카드사가 조달이나 조직, 인력 등 모든 측면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시 은행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물론 은행계 카드사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카드사가 다시 은행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용카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요. 마케팅이나 리스크 정책 등의 측면에선 그 말도 틀리진 않습니다. 은행에서 분사한 지 얼마 안 돼 다시 들어가는 것도 여러모로 부담인 것도 맞습니다.
지금의 얘기는 아닐 테지요. 하지만 12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금리 인상, 시장 포화 및 수익성 악화 등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속수무책이라면요. 물론 반대로 이런 이슈들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핀테크 업체나 인터넷 전문은행보다 경쟁력 있고 획기적인 결제서비스와 수익모델을 선보인다면 또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