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에 계좌를 제공하고 있는 시중은행에 대해 고강도 점검에 나섰다. 8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가상통화 거래가 실명확인이 어려운 은행의 가상계좌 서비스를 이용해 이뤄지고 있다"며 "불법자금의 유통을 방지하는 문지기인 은행이 오히려 이를 방조·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칼끝이 암호화폐 거래 당사자가 아닌, 계좌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을 향하면서 불똥이 애먼 곳으로 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불법거래 저승사자 FIU, 은행 관리시스템 '구멍' 찾는다
금융감독원과 FIU(금융정보분석원)는 8일부터 11일까지 암호화폐 취급업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농협은행·기업은행·신한은행·국민은행·우리은행·산업은행 등 6곳에 대해 합동 현장점검에 나섰다. 점검 대상은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실태와 실명확인시스템 운영 현황이다.
은행 점검사항을 세부적으로 보면 자금세탁방지 관련해선 가상화폐 취급업자의 자금세탁 위험 실사 여부, 가상화폐 취급업자 식별 절차 마련, 의심거래 보고 등에 대해 점검한다. 실명확인시스템 점검사항은 입금계좌와 가상계좌의 명의 일치 확인시스템 운영, 가상화폐 취급업자가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 거래중단 등의 절차를 마련했는지 등이다.
이번 점검의 강도는 FIU가 참여한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 금융위 산하 기관인 FIU는 불법 금융거래를 잡아내는 '저승사자'로 불린다. 금감원과 FIU의 합동점검 자체가 이례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FIU가 가상계좌 뿐만 아니라 (가상통화 관련) 은행의 운영전반에 대해 구멍이 있는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점검에서 불법 혐의가 있는 은행에 대해선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최 위원장은 "부적절하거나 불법적 거래가 나오면 은행의 가상통화 관련 가상계좌 서비스 중단을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가상통화 거래를 차단하거나 봉쇄하는 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업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다음주에 시행하고,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는 1월 중에 시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중·일 정부의 협력 방안도 모색 중이다. 금융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꺼내든 셈이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가상화폐 거래소 등 직접규제 한계
하지만 금융당국은 사각지대에 놓인 가상화폐 거래 주체 취급업소(거래소)에 대해선 여전히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정부는 가상통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기관 합동으로 취급업소 조사와 폐쇄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취급업소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체계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취급업소 규제를 위해선 입법 등이 필요한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입법 과정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며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입법 전에라도 가상통화의 무분별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대안을 찾고 있고, 이번 은행 점검이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중 은행 대부분은 자금세탁 방지 관련 시스템을 철저히 운영하고 있는데 금융당국이 너무 세게 이야기한 것 같다"며 "앞으로 감사를 받지 않거나 살아남으려면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를 끊던지 비중을 줄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