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실수인가, 조직적인 거짓말인가.
KB금융지주와 금융감독원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있다. 지난달 KB금융이 사외이사 평가를 금감원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중간 점수를 받은 사외이사와 최하점을 받은 사외이사를 바꿔 보고하면서다. KB금융은 잘못을 인정했지만 "직원의 단순한 실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라고 보기엔 찜찜하다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겉으로 드러난건 없지만 위중한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KB금융에 따르면, 지난달 여의도 금감원을 찾은 KB금융 모 부장은 사외이사 평가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에게 구두로 보고했다. A사외이사는 중간점수, B 사외이사는 최하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KB금융은 매년 사외이사를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이 결과를 금융당국에도 보고하고 있다. 일상적인 보고였다.
문제는 금감원이 KB금융 현장 감사에 나서면서 터졌다. 금감원은 KB금융 감사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 평가 원본 문서를 확인했다. 사외이사 평가 문서는 구두보고와 정반대였다. 구두보고에서 중간점수를 받았다던 A사외이사가 최하점이었고 구두보고에서 최하점을 받았다던 B사외이사가 중간 점수였다. 이날 금감원이 KB금융지주를 감사한 이유는 사외이사가 아닌 다른 문제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연히 '허위 보고'를 적발하게 된 셈이다.
[사진 = 이명근 기자qwe123@] |
KB금융은 잘못을 인정하고 해당 직원을 직위해제했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허위 보고 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KB금융 관계자는 "은행 직원들은 금감원에 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며 "금감원을 찾은 이 직원도 당황해 실수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이번 일(직원 실수)에 격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생각은 다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인의 문제인지 제도의 문제인지 입증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겉으로 드러난건 아직 없지만 위중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외이사는 경영자를 견제해야 하는데, 사외이사 연임에 (회사측이) 의도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나온 것"이라며 "경영자에 우호적이었던 A 사외이사를 보호하기 위해 점수를 바꿔 보고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접적으로 A사외이사를 옹호하기 위한 행위"라며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것은 최근 단행된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금감원 모 국장이 이번 인사에서 좌천됐다. 업계에선 KB금융의 허위보고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여러 사안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말을 아꼈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최흥식 금감원장이 시그널을 준 것"이라며 "하지만 복귀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금감원은 이미 하나금융지주 회장 선정과정에서 체면을 구긴 상황이다. 금감원은 최근 하나금융에 회장 선임을 2~3주 미뤄달라고 요구했지만 하나금융은 사실상 금융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일정대로 회장 선임 과정을 추진했다. 가뜩이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금감원이 이번에 KB금융지주로부터 '허위보고'를 받은 일이 겹치면서 업계에선 금융당국의 칼이 무뎌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KB금융에 개선책을 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 운영의 미흡한 점이 드러났다"며 "자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살펴보고 개선책을 찾아보라고 권고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외이사 선임 절차에 들어간 KB금융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 16일 KB금융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새 사외이사 선임에 착수했다. 7명의 사외이사중 최영휘·이병남·김유니스경희 이사 등이 일신상의 이유로 중임을 희망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다. 3명의 사외이사를 새롭게 선정해야 되는데 KB금융 입장에선 금감원과의 불편한 관계가 득이 될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