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정기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금융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사 모두 예민해진 모습이다. 긴장도를 끌어올린 화두는 '금융 지배구조 개선'. 같은 이슈를 놓고 당국과 금융업계가 다른 해석을 하며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당국은 '금융업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으로 쓰고, 금융지주사들은 '제도개선을 앞세운 최고경영진 물갈이'라고 읽는다. 주주총회 결과는 어떨까?
특히 올해 금융권 주총은 고위경영층(CEO, 사외이사) 임기가 대거 만료되면서 교체 폭이 큰 관심이다. 이 상황에서 당국-금융업계 갈등구도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시계제로'다. 주총을 앞두고 금융지주와 은행, 보험, 저축은행, 여신금융 등 금융사들의 지배구조 현황, 최고경영진 인사를 좌우할 핵심 이슈를 정리한다. [편집자]
올해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이 선임되는 금융지주는 하나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다. 차기 하나금융 대표이사 회장 후보에 오른 김정태 회장은 마지막 관문인 3월 주총을 기다리고 있고, 농협금융은 4월 임시주총에 앞서 김용환 회장 등을 포함해 후보를 물색중이다.
3연임에 도전하는 두 회장 모두 긍정적인 경영성적을 보여줘 유리한 입장이지만 주총 의장의 의사봉이 두드려지기까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것이 요즘 금융권 상황이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 |
하나금융은 후보 선정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부실대출 의혹 등 감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정을 늦추라고 요구했고, 채용비리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채용비리 22건중 13건이 하나은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하나금융은 후보 선정을 일정대로 진행하고 "특별채용은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금융업계는 금융당국이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하고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이슈를 제기했다며 주목하고 있다.
김정태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채용비리는 '국민 정서법'을 건드렸다. 실제로 작년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채용비리 탓에 사퇴했다. 검찰은 채용비리 의혹이 있는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광주은행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외풍이 몰아친 하나금융과 달리 농협금융은 조용한 편이다. 농협금융은 늦어도 3월말께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4월말 주주총회에서 회장을 선임한다. 임추위는 민상기·전홍렬·정병욱 사외이사와 오병관 부사장, 유남영 비상임이사위원 등 5명으로 구성된다. 아직 하마평도 나오지 않고 있어 업계는 김용환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나머지 은행들은 지난해 최고경영자 인사를 마무리했다. 우리은행은 작년 채용비리 사태를 봉합하고 손태승 행장이 취임했고, 윤중규 KB금융 회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이동걸 산업은행장 등도 작년 9월 취임하며 국책은행 인사도 마무리 단계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회장은 최근 친인근 채용비리 의혹에 집무실까지 압수수색당했고, 임기가 2년 남은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전 정부 때 임명됐다는 불안요인이 있다.
▲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은행장.[사진 = 이명근 기자] |
◇ "대주주가 없는한 문제 풀기 어렵다"
금융회사의 관치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등이 금감원의 중징계를 받고 중도 사퇴했다. 청와대가 지난달 "민간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시그널을 보냈지만 당국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
관치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금융지주에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9.64%를 보유하고 있고, 소액주주 지분이 77.84%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와 우리은행, 신한금융지주 지분도 각 9% 가량 보유하고 있다. 일본계 지분이 있는 신한금융을 제외한 금융지주는 모두 주인이 없는 셈이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는 대주주가 생기기 전엔 풀기 어렵다"며 "하지만 은산분리 등 산업자금 문제로 은행 대주주 찾기도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주인없는 회사에서 CEO를 뽑다보니 선정방식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작년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CEO 스스로 가까운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며 셀프 연임 논란을 제기했다. 셀프 연임은 금융회사 CEO가 사외이사를 뽑고, 사외이사가 CEO를 뽑는 구조를 말한다.
셀프 연임 논란이 확산되면서 KB금융과 하나금융은 회장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빠지기로 했다. 당국이 이르면 이번달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업계는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 경영능력이 셀프연임 논란 잠재울까
셀프연임 탓에 국내 장수 CEO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있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경영능력이 있고 선출 과정이 투명하다면 임기기간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미국 금융의 상징으로 불리는 JP모건 이사회는 최근 제이미 다이먼 회장의 5년 임기 연장안에 동의했다. 다이먼 회장이 임기를 다 채우면 그는 17년간 JP모건의 수장을 지내게 된다. 그도 연임에 대한 반대 공세에 시달렸지만 사외이사보다 까다로운 '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 등을 도입하며 '연임 논란'을 잠재웠다.
셀프 연임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정태 회장도 자신의 능력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조368억원으로 2016년보다 53.1% 증가했다. 2005년말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한 뒤 사상 최대 실적이면서 첫 2조원 돌파다. 주가 흐름도 좋다. 하나금융지주 주가는 지난달 최고점을 찍은 후 현재 5만원 내외로 오르내리고 있다.
김용환 회장이 이끄는 농협금융그룹도 올해 사상 처음으로 이익 1조원(농업지원사업비 3000억원 제외)에 도전한다. 지난해는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이 7285억원으로 이익목표를 조기달성했다.
관치 논란도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정부로부터 면허를 받는 금융회사는 다른 산업군보다 규제를 심하게 받을 수 밖에 없다.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 등이 아니라면 관치는 금융당국의 본래 목적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관련 연구원은 "세계 금융당국은 모두 관치를 한다"며 "미국의 재무성은 자금세탁방지법 등으로 세계를 관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관치를 어떻게 하느냐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금융회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주인이 없다는 점"이라며 "대부분 해외 금융회사는 경쟁사와 상호 지분을 교차 보유하면서 과점주주 형태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인수할 수도 없어 앞으로도 금융 인사 논란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