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 감안하더라도 다른 회사 밥그릇부터 뺏어오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살아남아야 나중에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카드업계 업황이 나빠지면서 카드사들의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할부금융 시장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면 지금은 반드시 해야 할 사업영역으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카드사들이 할부금융에 적극 나서면서 이미 할부금융 사업을 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와 경쟁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이런 우려가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 사업을 다각화할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자동차할부금융 '선택' 아닌 '필수'
하나카드는 작년 4분기부터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자동차할부금융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할부금융은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할 때 카드사가 소비자에 자금을 대여해주고 그 대신 이자를 받아 수익을 발생시키는 사업이다. 할부금융 시장의 90% 이상은 자동차 매매와 관련돼 있다.
하나카드가 자동차할부금융 시장 진출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카드업 수익성이 계속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해온 우대수수료 가맹점 범위 확대와 대출금리 인하 조치 등의 여파가 상당했다. 하나카드의 작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563억원. 전년 대비 47.2% 줄었다. 카드업에 집중해 온 탓에 업황 변화가 그대로 반영됐다.
할부금융 사업은 금융당국 등록만으로 가능하다. 현재 KB국민·신한·롯데·삼성·우리·현대카드 등 국내 카드사 대부분이 할부금융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신한카드와 우리카드의 작년 연결 순이익은 각각 전년대비 2.0%, 9.7% 감소하는데 그쳤는데, 할부금융 수익이 카드업황 부진을 상쇄해준 결과다. KB국민카드 순이익은 10.4% 증가하기도 했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조직 내 외환카드 출신과 하나SK카드 출신 간 화학적 결합 작업이 지난해 하반기까지 마무리되지 않아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에는 디지털 페이먼트 중심으로 사고방식을 바꿔 진출할 수 있는 모든 사업 영역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캐피탈이 신차·중고차 오토론과 리스, 렌터카 사업 등 할부금융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하나카드의 신사업 추진을 막는 요소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같은 금융지주 내 계열사끼리 경쟁할 필요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나캐피탈 관계자는 "앞으로 할부금융 사업을 어떻게 추진할지 하나카드 측과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카드사, 할부금융 자산 5년 만에 4배 이상 급증
은행과 캐피탈사가 진출해 있는 할부금융 시장에서 카드사가 승기를 잡기 위해선 캐피탈사와 협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KB캐피탈이 운영하고 있는 중고차매매 플랫폼 'KB차차차'에서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신한카드는 기업금융에 주력하는 신한캐피탈이 놓친 할부금융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카드는 강남·마포·인천·수원·부산·강북·대전·대구·광주 등 전국 9곳 영업점에서 자동차할부금융 사업과 렌터카·리스카 영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금융 지주 내 캐피탈사가 없어 캐피탈 영업권을 적극적으로 흡수한 결과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카드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카드-캐피탈 두 사업 영역을 절묘하게 합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비금융계 카드사도 공격적이다. 금융계 카드사는 모회사 지원으로 자금조달에 강점을 갖지만 비금융계 카드사는 관계사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카드는 주로 현대·기아자동차와 연계해 구매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삼성카드는 자동차할부금융을 주축으로 삼성전자 제품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현재 국내 카드사 8곳의 할부금융 자산은 7조5355억원이다. 2014년말 1조8287억원에서 5년 만에 4배 이상 성장했다. 여신업계 관계자는 "카드사가 할부금융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점이 캐피탈사 입장에선 불만일 수 있지만 여신업계 할부금융 시장 전체를 보면 아직 확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캐피탈사는 카드사의 할부금융 진출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26일 현재 여신금융협회에 등록된 회원사 중 캐피탈사는 모두 47곳이다.
캐피탈사들은 카드사 등의 할부금융 진출에 대응해 자동차보험 판매 진출과 부동산리스 사업 확대 등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