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에서 핵심은 신뢰다. 명사인 금융(金融)의 사전적 의미는 '금전을 융통하는 일'이다. 결국 돈과 관련된 산업인데 계약 당사자 간 믿음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은행에서 적금에 가입하거나 설계사를 만나 종신보험 청약서에 서명을 하는 등 직접적인 계약 행위가 없어도 우리 모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의 당사자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우리가 사용하는 돈은 사실 종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그려진 지폐를 들고 식당에 가면 한 끼 식사와 교환할 수 있다. 신용화폐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액면가의 교환 가치를 인정하는 계약에 모두 동의했기에 성립한다.
이처럼 금융과 그 하위 범주의 모든 산업은 상호 간의 신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보험은 신뢰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오랜 시간 금융 소비자 민원 1위가 보험이며 그 비중은 전체 금융의 과반이 넘는 수준이다. 보험사나 종사자는 매번 사랑, 신뢰, 믿음을 앞세우지만 소비자는 불신, 사기, 불만 등을 떠올린다. 보험사는 물론이고 일반인이 보험 계약의 체결을 위해 대면하는 설계사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깊다. 보험은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금융이다. 하지만 소비자 신뢰를 상실한지 오래되어 보험 상품에 가입하고 사용하는데 상당한 제한이 따른다.
과거 일반인이 보험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설계사를 반드시 만나야 했지만 지금은 다이렉트 채널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계약을 모집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설계사를 통한 대면채널이 9할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좋은 설계사를 만나야 한다'란 자조적인 농담도 존재한다. 모든 설계사가 스스로 전문가를 내세우는 형국에서 소비자가 진짜 좋은 설계사를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까워 보인다. 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신뢰할 대상을 찾지 못한 소비자의 방황은 결국 산업 전체의 위기를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자가 직접 다이렉트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을 제외한 모든 보험 종목에서 다이렉트 가입률이 절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설계 및 계약 전 알릴의무 등 여러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채널에서 가입률이 높은 자동차보험도 제대로 가입된 비율이 극히 낮다보니 사고 후 처리를 위한 적정 보험금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채널의 가치가 주목 받고 있지만 보험 앞에 선 소비자의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못한다.
살펴본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빅 데이터, 인공지능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염병으로 인해 대면 상담이 어려운 상황에서 SNS를 활용하여 보험 소비자를 당기고 모바일 청약을 통해 신계약을 체결하는 설계사의 존재가 낯설지 않다. 이런 비대면 보험 소비 경험이 쌓이면 설계 과정 등은 충분히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 사실 대면채널이 모집 방법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했던 이유는 자발적인 보험 가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을 환기해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된 현실을 살펴보니 비대면으로 보험을 제안하고 가입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기존 채널과 다른 누군가 객관적이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여 가입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기술이 보장분석과 설계를 대신한다면 새로운 모집 방법이 대거 등장하는 상황도 그려볼 수 있다. 물론 핵심은 소비자와 맺는 신뢰다. 믿을 수 있는 어떤 존재가 모객을 하여 보험사와 계약자를 적절하게 연결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보험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이 도출될 것이다.
코로나19로 기존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이 의심받고 변화하는 형국이다. 코로나 이후 새로운 일상(post covid-19 new normal)에서는 소비자가 보험 상품을 구매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누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바탕에는 신뢰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함은 명백하다.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보험을 매개로 보험사와 계약자의 관계를 재정립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