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빅테크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은행들이 디지털 금융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특히 앞다퉈 비은행 출신의 디지털 전문가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들어 4대 은행 모두 타사 출신의 전문가를 잇따라 영입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은행들이 금융사 특유의 순혈주의를 깨고 디지털 DNA 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성공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은행들, 외부 디지털 전문가 임원 잇딴 영입
11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초 테크그룹 소속 테크기술본부장에 박기은 전 네이버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했다. 박 전무는 네이버 서비스플랫폼개발센터 팀장과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 IT서비스사업본부 수석아키텍트를 거치는 등 빅테크 선두주자인 네이버에서 잔뼈가 굵었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해 삼성전자 빅데이터센터장 출신인 윤진수 전무를 영입한 바 있다. 윤 전무는 삼성전자 SDS클라우드 추진 팀장과 삼성SDS 데이터분석 사업담당 임원 등을 지냈다.
또한 지난해 말 조영서 전 신한 DS 부사장도 DT 전략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조 부사장은 베인컨설팅 파트너 출신으로 신한금융지주에서 디지털전략본부장을 지냈다. 비금융 출신은 아니지만 KB금융과 자웅을 겨루는 경쟁사 출신 영입도 주저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질세라 신한은행도 외부 디지털 전문가를 잇따라 모셔왔다. 최근 인공지능(AI) 사업을 총괄하는 통합AI센터(AICC) 수장으로 삼성SDS 출신의 김민수 센터장을 선임했다. 김 센터장은 KAIST에서 데이터마이닝을 전공하고 삼성SDS AI선행연구소 부서장으로 AI 기술 연구 및 관련 사업을 이끌어 왔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은행장 직속 디지털혁신단을 신설하고 김혜주 마이데이터 유닛(MyData Unit) 상무와 김준환 데이터 유닛(Data Unit) 상무를 영입한 바 있다. 김혜주 상무는 삼성전자 마케팅팀 CRM 부장을 거쳐 KT에서 AI/빅데이터(Bigdata) 사업본부, AI/Bigdata 융합사업 담당 상무를 지냈고 김준환 상무는 삼성전자 글로벌기술센터 수석연구원과 SK C&C 플랫폼1그룹 상무를 역임했다.
우리은행도 최근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던 DT추진단을 디지털그룹으로 격상하고 디지털금융단과 DI추진단을 신설, DI추진단장으로 김진현 전 삼성화재 디지털 부장을 새롭게 영입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초 미래금융본부에서 개인디지털사업 섹션과 AI 빅데이터 섹션을 담당할 김소정 부행장을 외부에서 데려왔다. 김소정 부행장은 이커머스 업체인 이베이코리아 통합마케팅본부장과 요기요 등을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와 신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빅테크와의 승부 주목…내부 융합 관건
은행들이 앞다퉈 외부에서 빅데이터 등에 밝은 디지털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는 금융 영역을 파고드는 빅테크들에 맞서 디지털 금융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다.
은행들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타 본부는 물론 IT·디지털 관련 분야에서도 외부 전문가 출신을 찾기 힘들었다. 현재도 시중은행에서 IT·디지털 관련 부서를 총괄하는 임원들 대다수가 은행이나 금융권 출신이다.
그러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모두 지난해 하반기 들어 외부 디지털 전문가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의 DT추진단(최고디지털책임자(CDO))은 여전히 은행 출신이 맡고 있고 하나은행 또한 외부에서 임원급 IT 전문가를 영입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최초로 현재도 Innovation & ICT그룹 겸 ICT본부은 하나은행 출신 임원이 총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이 기존의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전문가를 받아들이면서 디지털화에 제대로 사활을 걸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실제 빅테크 업체들에 맞서 성공을 거둘지 여부도 주목된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AI와 빅데이터, 플랫폼 등 관련 신사업에 정통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쟁적으로 외부에서 거물급 전문가들을 수혈하고 있지만 상당수 비금융권 출신이다보니 금융과의 접목이나 내부 융합 등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의 과감한 외부 디지털 전문가 영입이 실제 성과를 낼지에 대해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다만 디지털 관련 영역은 전문성이 워낙 강한 데다 비금융권 전문가들을 영입해 순혈주의가 강한 은행 내부와의 융합을 잘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