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금융지주와 주요 상장 자회사인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주가가 17일 나란히 급락했다. 지난주 호실적과 함께 밝힌 주주환원 정책 공시가 빌미가 됐다.
메리츠금융지주 등은 지난주 실적 발표와 함께 주주가치 제고 목적의 중기 주주환원 정책을 공시했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10% 수준의 배당을 유지하고 자사주 매입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공 방안을 실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으로 주가관리 측면에서 배당보다 효율적인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 확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메리츠금융 측이 밝힌 배당성향 수준이다. 최근 3년간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배당성향은 30%를 넘어섰고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우 60%대에 달한다. 배당 규모가 작게는 3분의 1토막에서 많게는 5분의 1토막이 나는 셈이다. 지난해 3사의 배당성향(별도 기준)은 각각 35%, 53%, 89%로 지난해 대비 배당 감소 폭은 더 커진다.
이처럼 배당성향 감소 수준을 명확히 밝힌 것과 달리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의 규모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증권가에서는 메리츠화재 등의 목표주가를 낮추거나 이례적으로 매도 의견을 제시하는 곳까지 나왔다.
이날 KB증권은 메리츠화재의 주주환원율 하락과 불확실성 확대로 목표주가를 기존 대비 20.9% 하향한 1만7000원으로 제시하고 투자의견도 매도로 제시했다. 올해 주당배당금(DPS) 전망치도 줄어든 배당성향에 맞춰 1300원에서 450원으로 낮췄다.
메리츠증권에 대해서도 목표주가를 16.7% 하향하고 매도 의견으로 조정했다. 메리츠증권의 DPS 전망치도 320원에서 70원으로 하향됐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높은 배당수익률이 메리츠 화재와 증권 중요한 투자 포인트였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기존 배당성향에서 미달하는 부분에 대해 자사주 매입 소각을 한다면 기업가치는 훼손되지 않는 만큼 명확한 계획이 발표되면 이를 목표주가 산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NH투자증권 역시 배당성향 하향과 함께 주주 가치 제고방안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며 메리츠 3사의 핵심 투자 포인트가 배당이었다는 측면에서 당분간 주가 투자 심리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특히 시장에서는 메리츠금융 3사의 대규모 배당 컷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경우 나란히 시장 컨센서스를 웃도는 호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실적에 비례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배당성향을 오히려 축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적으로 배당 축소를 동반한 자사주 매입 소각은 주주들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배당과 자사주 매입 모두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에 속한다. 배당의 경우 배당소득세가 부과되지만 자사주 매입은 관련 세금이 붙지 않는 장점도 있다. 메리츠금융의 경우 주가관리 측면에서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기관 투자자들도 주가가 오를 경우 캐피탈 게인(자본이익)을 얻은 상황에서 배당을 추가로 요구하지 않는다"며 "자사주 매입뿐 아니라 소각을 병행하기 때문에 주식 가치 상승 측면에서는 장기적으로는 주주들에게 긍정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3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메리츠증권은 신탁계약으로 취득하는 주식은 취득 완료 후 전량 이익소각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익을 직접적으로 나눠주는 배당을 대폭 줄이는 대신 대주주의 지분율을 높이는 자사주 매입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배당성향 축소 발표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메리츠금융 입장에서는 더 저렴한 가격에 자사주 매입이 가능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한금융투자는 "현시점에서의 공시 의도에 공감하기 어렵다"며 "자사주 매입과 소각 시 궁극적으로 지분율 확대가 예상되며 완전 자회사에 대한 개연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일부에서는 메리츠금융이 오너 회사인 만큼 주주환원 정책의 중심이 배당에서 자사주 매입으로 전환한 것이 향후 원활한 상속을 염두에 두거나, 자사주 매입과 오너 지분 매각 병행 등 염두에 뒀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우 지난해 말 현재 조정호 회장의 지분율이 72.17%에 달하며 장녀인 조효재 씨가 0.05%의 지분율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메리츠금융지주의 메리츠화재 지분율은 56.09%, 메리츠증권은 47.06%다.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증권 지분 0.92%를, 조효재 씨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지분을 각각 0.03%와 0.05% 보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