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계 '빅3'(삼성·한화·교보생명) 중 유일한 비상장사인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재추진한다. 내년 상반기 유가증권 시장 상장이 목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 시선은 싸늘하다. 2대 주주인 재무적 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과의 대주주 분쟁이 한창인데도,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것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송사에 매어 있으면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승인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소송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이른바 '쇼잉(보여주기)'이라는 냉소가 나온다.
교보생명, IPO 추진 재개…내년 코스피 간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그간 주주 간 분쟁 등으로 정체돼 있던 IPO 절차를 재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이사회를 개최해 내달 중 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내년 상반기 중에 IPO를 완료한다는 계획을 논의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IPO 추진은 오는 2023년부터 적용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대비해 자본 조달 방법을 다양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금융지주사로의 전환을 위한 초석을 다지겠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공모 규모와 시기는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확정할 계획이다.
교보생명은 지난 2018년 하반기 IPO 추진을 공식화한 바 있다. 그러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너티 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 PE·베어링 PE·싱가포르투자청) 등 FI 간에 발생한 국제중재가 2년 반 이상 이어지며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양측의 갈등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54억원에 인수했다. 신창재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이 33.78%(신인재·영애·경애 등 특수 관계인 포함시 39.4%)로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백기사'로 등장한 것이다.
교보생명은 FI들에게 2015년 9월까지 회사를 상장하기로 약속하고 풋옵션(특정 상품을 특정 시점·특정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 권리)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상장이 불발됐고 FI들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2018년 11월 2조원 규모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FI 측은 풋옵션 행사가격을 주당 40만9000원으로 제출한 후 신 회장의 지분을 포함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가산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신 회장이 가격 적정성을 문제 삼으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9년 3월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국제중재 절차를 밟아 왔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ICC 중재재판부가 FI 측의 풋옵션 행사는 유효하지만 풋옵션 행사 가격은 재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교보생명 측은 "ICC가 신 회장의 주식 매수 의무나 계약 미이행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이에 경영상의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IPO 추진을 재개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교보생명은 보험업계에 남은 마지막 상장 대어로 꼽힌다. 업계 빅3 중 유일한 비상장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보그룹의 실질적 지주사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실제 시가총액이 업계 1위사인 삼성생명(13조1800억원)과 비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상장 위해선 대주주 리스크 해소 돼야"
하지만 금투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교보생명이 지난해 FI와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관계자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대주주 간 분쟁과 경영권 리스크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두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 IPO는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고 단언했다.
실제 선례도 있다. 코넥스 시가총액 1위 유전자가위 업체 툴젠은 코스닥 이전 상장에서 2015년, 2016년, 2018년 등 세 차례 고배를 마셨다. 유전자가위 기술 특허권의 실효성 논란과 최대주주 지분율 문제로 인해 거래소가 번번이 승인을 거부한 것이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대주주 분쟁과 소송전에 대해 거래소가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장 심사가 연기되거나 아예 거부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교보생명이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상장 생보사들의 주가가 계속 하향세를 타고 있고 경영 승계도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신 회장의 장남인 신중하 씨는 교보생명 자회사인 교보정보통신에서 디지털혁신 신사업추진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주식 승계율은 아직 0%다. 상장사는 비상장사에 비해 경영권이나 지분승계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미래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에 주식증여 세금도 비상장사 대비 더 내야 한다.
상장할 경우 신 씨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주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미지수다. 금투업계 다른 관계자는 "과거 삼성그룹과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분쟁은 주주들의 경영권 흔들기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교보생명 상장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경영권 방어에도 유리한 카드가 아닐 거라는 관측인데, 결국 소송전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상장 추진과 철회는 이미 십수 년간 이어진 이슈"라며 "'FI의 투자금회수를 위해 회사가 이 정도로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평가는 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