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과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 컨소시엄(이하 어피너티)이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분쟁의 '승자'가 누구냐를 놓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가 FI측이 요구한 40만9000원이라는 풋옵션 가격에 대해 신 회장의 매수 의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손을 들어준 듯 했으나 풋옵션 계약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인정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을 경영권 위기로 몰았던 위험이 일부 해소된 듯 하지만 FI가 가격 재산정을 통해 풋옵션 행사 이행을 준비 중인 상태여서 사실상 완벽한 승자없이 게임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보생명 "FI 핵심 쟁점 모두 기각" 우리의 '승'
교보생명은 "중재판정부가 지난 6일 신 회장이 어피너티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이 제출한 40만9000원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해 분쟁에서 승소했다"라고 밝혔다.
주주간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도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난 만큼 FI가 중재 재판에서 요구한 핵심사안이 모두 기각됐으며 사실상 행사한 풋옵션이 무효화 된 것이라는게 교보생명 주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중재의 핵심 쟁점이 '어피너티의 풋옵션 행사에 따른 매매대금 청구'였고 이것이 전부 기각됐다"라며 "풋옵션 조항 효력에 대한 공방은 중재에서 다뤄진 여러 사항중 하나로 핵심 쟁점인 주당 40만9000원 행사 주장이 받아들여 지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FI는 지난 2012년 신 회장과 주주간계약(SHA)을 체결하고 교보생명 지분 24%를 약 1조2054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2015년 9월까지 IPO(기업공개)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신 회장에게 주식을 되팔수 있는 풋옵션 권리를 받았고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FI가 신 회장 지분에 경영권프리미엄을 가산해 산출한 금액은 40만9912원, 약 2조원 규모로 신 회장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 방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번 중재판정부의 결정으로 이 같은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에 더해 교보생명은 "어피너티에서 요구한 2조원 주장이 기각된 것으로 핵심 요구사항이 모두 기각된 만큼 어피너티의 승소 주장은 잘못됐다"라고 주장했다.
풋옵션 효력 유효...향후 가격 산정이 관건
반면 어피너티측은 중재판정부의 중재비용 부과 등을 근거로 자신들의 '승소'라고 반박했다. 중재판정부가 신 회장에게 어피너티 중재비용 전부와 변호사 비용 50%, 신 회장 본인 비용 전부를 부담하라고 지시해 신 회장이 책임 있는 당사자임을 인정한 것이라는게 어피너티의 주장이다.
어피너티는 "풋옵션 조항 자체가 무효라는 신 회장 측 주장이 근거 없음으로 결론났다"라며 "신 회장이 풋옵션 무효 이유를 내세워 이행을 거부했고 중재판정부도 풋옵션 유효성을 이번 분쟁의 핵심으로 봤는데 이를 핵심 쟁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자기 주장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판결 내용이 풋옵션 행사에 대한 매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풋옵션 행사 효력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가격이 과도하거나 풋옵션 계약 자체가 무효여서 신 회장 측이 매수 의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식 매수 산정에 대한 사전 절차가 이행되지 않아 다음 단계인 적정시장가치(FMV)에 대한 판단이나 이에 기반한 주식매수를 판정할 수 없다는 게 중재판정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즉 FI가 신 회장의 평가를 추가로 받아 주주간 계약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FMV를 확정한 후 청구했어야 하는데 이 같은 절차를 따르지 않아 이에 따른 가격으로 매수 청구를 할 수 없는 결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피너티 관계자는 "애초 계약상 가격을 산정하는데 있어 양측이 가격을 내고 중간값을 찾지 못할 경우 제3의 평가기관을 정해 가격을 산출하도록 했는데 신 회장이 풋옵션 조항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가격을 제출하지 않아 문제가 된 것"이라며 "풋옵션 행사는 유효하기 때문에 신 회장의 계약 이행을 전제로 가격산정을 다시 해 풋옵션 거래를 종결시킬 예정으로 향후 가격을 어떻게 정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 회장 측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 주장과 관련해서는 "풋옵션 가격에 따라 청구할 손해배상금액이 달라질 수 있어 손해배상금을 특정해 요청하지 않았으며, 청구금액이 없으니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라고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어피너티 관계자는 "판정문에서 신 회장 측이 패소당사자(losing party)라고 적시됐음에도 교보 측에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어 유감"이라며 "신 회장의 계약위반이 확정된 만큼 지속적으로 위반상태가 계속될 경우 손해배상금을 산정해 청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승자없는 싸움, 게임 다시 원점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소송을 제기한 FI 측의 일부 승소에 방점을 두고 있다. 다만 재판 결과에 따른 이후 유불리는 종합적으로 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사중재원 법률 전문가는 "향후 금액이 애초에 요구헸던 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날지는 알 수 없으나 풋옵션 행사 유효에 손을 들어줬다면 신청인(FI)의 일부 승소로 볼 수 있다"라며 "다만 종합적으로는 일부 승소 여부에 상관 없이 신청인과 피신청인 누구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중재 판결로 신 회장은 40만9000원이라는 풋옵션 매수 의무가 사라져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향후 가격 결정에 따라 다시 희비가 갈릴 수 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고비가 남아 있는 셈이다.
실제 어피니티는 현재 가격 재산정을 통한 풋옵션 이행 방안을 논의 중이다. 어피너티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된 것은 아니지만 풋옵션 유효에 따른 더 효율적이고 빠른 이행방안이 무엇인지를 검토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교보생명 역시 추후 FI 행보에 따라 대응 방안을 고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재판정부가 가치평가를 한 딜로인트 안진에 대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판단을 보류했고, 가치 재산정시 기존 가격보다 낮은 선에서 가격이 정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만큼 신 회장과 FI 측 모두 승자 없이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