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금리 인상기조가 강해지고 자산시장 불안이 확대되면서 대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원화대출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윤석열 정부 공약인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 방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당분간 은행들이 손님 모시기를 위한 금리 경쟁을 펼쳐질 전망이다.
빠르게 오르는 금리에 대출 수요 감소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는 1.84%로 전달보다 0.12%포인트 상승했다. 1년 전에 비해서는 1.02%포인트 급등한 숫자다.
신규 취급액보다 변동성이 적은 잔액 기준 역시 오름세가 가파르다. 전달보다는 0.08%포인트, 지난해 4월과 비교하면 0.54%포인트 상승한 1.58%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에 은행들이 수신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났다. 이 영향으로 대출 금리도 높아지면서 대출 수요자들의 이자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실제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3억원을 받는 경우 올 4월 금리 기준(4.18%, 은행연합회)으로는 매달 146만원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1년 전(금리 2.62%, 120만원)과 비교하면 21.6%(26만원) 늘어난다.
또 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 불안도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4월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말 대비 5000억원 줄었다.
마진 줄여도 대출 늘리자
이처럼 대출 수요가 줄자 은행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원화대출 성장 목표를 달성에 실패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은행들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기간 동안 원화 대출을 크게 늘렸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원화대출 증가세는 주춤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수익성은 개선돼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정 수준 마진을 줄일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또 '역대급' 실적 금융지주, 예대금리차 공약 힘 실릴까(4월27일)
한 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낮추면 당장의 이자수익은 줄어들 수 있지만 은행 입장에선 원화 대출 규모 성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대출 수요가 적을 때는 금리 경쟁을 통해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5년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인하했다. 금리 상승기에 대출 차주들의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선택지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KB국민은행도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0.15%포인트, 고정금리(혼합형)도 0.4%포인트 낮춘 바 있다.
은행들 입장에선 새 정부 출범 후 대출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졌고, 부동산 규제 완화로 주택 매입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으로 고객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다.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에도 대출 금리를 하향 조정하는 이유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공시주기를 기존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는 등의 내용이다. 은행들은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가 금리를 낮추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매달 공시될 경우 부담이 클 수 있고, 금리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저금리 시기에는 은행들이 대출 한도를 늘리는데 주력했다면 금리 인상기에는 이자수익이 증가해 금리 인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라며 "앞으로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주어진 환경 아래서 금리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