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상승기 금융소비자들의 이자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안심전환대출 신청이 15일 시작됐다. 지난 2019년 은행 영업점에 안심전환대출을 받기 위해 '장사진'이 펼쳐졌던 기억이 있어 기자는 이번에도 현장 취재를 준비했다.
안심전환대출 신청 첫날인 15일에는 2019년의 장사진은 재현되지 않았다. 은행 영업점 창구 중에서 대출상담 창구는 한산했다. 대부분 은행 영업점에서는 대기표를 받자마자 상담도 가능했다.
겉으로는 안심전환대출 출시를 앞두고 은행들이 비대면 프로세스를 마련해 굳이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도록 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금융위 역시 혼잡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생년 끝자리에 따라 신청 요일을 달리하는 '요일제 방식'을 도입한것도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번에 출시된 안심전환대출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의 판단이었다. 일부 금융소비자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거침없이 내놓기도 했다.
안심전환대출 첫날 한산했던 은행창구
안심전환대출 출시 이틀전부터 기자는 부동산 매매 정보가 담긴 지도를 훑어야 했다. 15일부터 신청을 받는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주택가격 3억원 이하, 1주택 가구,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 이하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문제는 3억원 이하의 주택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을 넘어 경기권까지 지도를 넓혀 살펴봐도 3억원 이하의 아파트가 밀집된 곳은 찾기 어려웠다. 이에 금융권과 부동산업계로부터 조언을 구해 빌라, 다주택 등 3억원 이하의 주택 매물이 많다는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등을 추천받아 두 지역의 현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KB국민은행 금천지점이었다. 전 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는 곳이 KB국민은행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오전 9시 30분 은행문이 열자 많은 금융소비자들의 발길이 은행으로 이어졌다. 30분가량 은행으로 들어가는 금융소비자들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안심전환대출 신청 첫날인 만큼 관련 된 업무를 보기위해 은행을 찾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대답은 달랐다.
이날 은행을 찾은 최명진(가명·46세)씨는 "자영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가게문을 열기 전 은행업무를 보기위해 은행을 찾았다"라며 "안심전환대출을 받기위해 찾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고객들은 어땠을까. 기자는 일부러 은행의 문이 열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 객장으로 입장했다. 앞서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안심전환 대출 신청을 했는지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이후 안내직원에게 안심전환대출 신청날이라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았다고 전했다. 그러자 안심전환대출 상담을 위한 인력이 따로 나와 곧장 기자를 응대해 안심전환대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객장 문을 연 이후 안심전환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은 많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을 나온 이후 인근 하나은행 시흥동 지점을 찾았다. 시흥동 지점은 1층은 일반 고객, 2층은 대출고객으로 층 수를 나눠놓았다. 1층은 고객들로 북적였지만 2층은 상담중인 고객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한산했다.
이후 강서구 등촌동으로 이동해 안심전환대출을 취급하는 나머지 4개 은행 지점들을 두루 살폈다. 하지만 대출창구는 한산했다. 2019년 안심전환대출을 받기 위해 긴 장사진을 쳤던 2019년의 광경은 재현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광화문 시내로 이동해 은행 영업점 창구를 살폈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할 가능성도 높아서다. 다만 실제로 광화문 시내 은행 영업점에 발품을 팔아도 안심전환대출 신청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는 금융소비자는 만나기 힘들었다.
긍정적으로 바라본 첫 날 풍경
일단 2019년과 같은 장사진이 펼쳐지지 않은 이유를 긍정적으로 따져보면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디지털 금융의 힘이다. 안심전환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들 대부분이 은행 모바일뱅킹 앱으로 신청이 가능하도록 해놔서다. 모바일뱅킹 앱에 접속하면 굳이 영업점을 내방하지 않더라도 신청이 가능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아직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직접 내방한 고객보다는 비대면을 통해 신청한 고객이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이유는 금융위원회가 '요일제' 방식을 도입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는 이번 안심전환대출 신청에 앞서 가입이 몰릴 것을 대비해 주민등록번호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가입 신청 요일을 다르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했을 당시 정부가 내놨던 마스크 5부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은행 영업점 직원은 "개인마다 신청할 수 있는 요일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요일 가입자가 아닌 경우 안심전환대출 전체에 대한 설명만 진행하고 나머지는 해당 요일에 비대면으로 신청하거나 영업점을 다시 내방하도록 안내했다"라며 "이 역시 첫날 혼잡을 막는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삐딱하게 바라본 첫 날 풍경
지난 2019년 안심전환대출 신청시와 달리 '장사진'이 펼쳐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의미 없는 정책'을 내놨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2019년 출시된 안심전환 대출 신청자격은 △주택가격 9억원 이하 △1주택 가구 △부부합산 소득 8500만원 이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출시된 안심전환 대출 신청 자격은 △주택가격 4억원 이하 △1주택 가구 △부부합산소득 7000만원 이하다. 이날부터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안심전환대출은 주택가격 3억원 이하일 경우 우선 대상자다.
기자가 현장을 찾기 전 부동산 지도를 펼치고 긴 시간 고민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상 인구가 많이 몰려있는 지역에 3억원 이하의 주택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만큼 대상이 되는 대출차주가 극히 적을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KB국민은행의 KB부동산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값 평균은 12억7879만원으로 집계됐다. 경기권으로 시야를 넓혀도 평균 아파트 가격은 6억원을 넘는다.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가장 보편적인 거주형태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기존 주택담보대출 보유자들은 아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은행 지점장은 "서울, 수도권 내에서 3억원 이하 주택을 찾으려면 아파트는 해당이 안되고 빌라, 단독주택 등만 가능할 것"이라며 "사실상 신청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대면으로 신청을 많이 했다면 앱이나 홈페이지가 순간 마비라도 됐을텐데 그런것도 없지 않았느냐"며 "그만큼 해당되는 고객이 얼마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날 광화문에서 만난 직장인 김순현(37세·가명)씨는 "현재 용인 동백동에 거주중인데 이곳만 해도 주변 주택가격이 5억원이 넘는다"라며 "안심전환대출 대상을 정할때 4억원 이하 주택을 보유한 대출차주에게만 공급하겠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는 오는 30일까지 3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신청을 받고 내달 6일부터 17일까지 4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신청을 연이어 받기로 했다. 한도는 20조원으로 2차 신청까지 재원이 소진되지 않으면 주택가격 제한을 올리는 것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안심전환대출의 금리를 맹신하지 말고 깊은 고민 이후에 신청해야 한다는 현장 직원의 분석도 나왔다.
한 은행 영업점 직원은 "안심전환대출의 금리만 보고 결정해서는 안된다"라며 "금리가 최저 연 3.8%라는 점을 보고 많이들 오시는데 이는 만기가 10년인 경우로 원리금을 동시에 상환해야 하는 주담대는 이자부담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안심전환대출의 최대 한도 2억5000만원을 금리 3.8%로, 만기 10년으로 대환할 경우 매달 나가는 원금과 이자는 250만7434원에 달한다. 만기를 30년으로 설정할 경우 금리는 4.0%로 상승하지만 매달 나가는 원리금은 119만3538원으로 줄어든다.
이 직원은 "앞으로도 금리가 계속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안심전환대출이 나쁘다고 보기는 힘들다"라며 "다만 금리만 맹신해서는 안되고 현재 지출할 수 있는 고정비용을 따져본 이후 만기를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금리만 보고 결정할 경우 오히려 매월 나가는 이자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이 부분은 정부에서 분명하게 고지를 안한 측면이 있는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은행 영업점 직원들의 경우 안일하게 안심전환대출 상담자를 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일부 은행 영업점 직원의 경우 "대출을 받은 경우 근저당권이 해당 영업점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신청해야 한다"며 신청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은행 대출을 받는 경우 맨 처음 대출을 받은 지점에서 관리하도록 돼 있다"라면서도 "다만 안심전환대출과 같은 정책대출의 경우 다른 영업점에서도 신청하면 서류를 공유하는 시스템은 구축을 해놨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직원의 안일한 대처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부차원에서 꾸준히 교육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