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은행권을 향해 다시 한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원장은 국민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면서 취약 차주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하반기 금리상승 시기에 은행들이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이자 수익을 거뒀지만 소비자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극히 적었다는 것이다.
은행권 상생 노력 부족해…경쟁 더 필요
이 원장은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소비자·전문가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작년 3∼4분기 은행의 이자 수익 증가 추세를 보면, 전년 대비 증가 규모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했다"면서 "은행이 (취약 차주)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긴 했으나, 냉정하게 말하면 수조원 단위 이자수익 증가 규모의 5%, 10%도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산술적 결론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연합회 등에서 정책을 마련해도 여신을 실행하는 일선에는 전달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조원에 달하는 초과 발생 이익 중 몇백, 몇십억 수준의 수수료 감면·이자 감면만이 소비자들에게 귀결되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은행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상생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면서 "은행이 금융시장 안정과 국민의 자산 관리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은행의 공공성에 대해 많은 분이 공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권을 향한 부정적 여론은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체제로 인한 경쟁제한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도 재차 언급했다.
이 원장은 "이러한 부정적 여론은 대형은행 중심의 과점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경쟁제한 등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손쉬운 이자 이익에 집중하고 이익을 과도한 성과급 등으로 분배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실망과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 점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새희망홀씨 금리, 1%p 추가 인하 검토"
이날 간담회에는 이 원장과 이승열 하나은행장 외에도 석용찬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장과 김종철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씨제이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연합 이사장), 개인 차주 윤정수 씨 및 학계·연구계 전문가 등이 참석해 고금리로 인한 금융 애로사항과 업계 요청사항을 전했다.
하나은행은 이 자리에서 오는 3월부터 은행 수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이자 캐시백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서민금융 상품인 '햇살론 15' 고객 대상으로 대출 원금의 1%에 상당하는 금액을 캐시백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으로는 신규 취급하면 변동금리 수준까지 이자를 감면해주고, 6개월 단위로 변동금리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 고정금리 대출 상품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기존 청년 창업자 재기 지원 프로그램과 관련해 연체로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연체 가산금리를 전부 감면할 예정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개인 차주 등은 금감원과 하나은행에 신용등급 하향 한시적 유예, 대출금리 인상 유예, 신·기보 신용 보증 비율 100% 전액 보증 등의 다양한 지원 방안을 요구했다.
이에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중소기업의 신용등급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 자금에 대한 금리는 우대하고 있고, 설비투자에 대해서는 금리 감면을 한 1% 정도 진행하고 있다"며 "신용등급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기존 신용등급에서 변동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소비자 돌아가는 혜택 미미"
간담회가 끝난 뒤 이 원장은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은행들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초과 이익을 거둬들이는 것에 비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미미한 수준이라고 다시 한번 비판했다.
이 원장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금리 급상승 국면에서 은행들이 수십조에 달하는 이자수익을 거뒀고, 그중에서 작년에 증가된 분만 해도 수조원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작년 한 해 동안 은행이 소비자를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실시했으나, 소비자들은 실질적으로 (초과 이익 대비) 극히 일부 수준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의 예대금리차 축소 방안과 관련해서는 "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하는 등 방법으로 금리 급변동시에도 국민에게 충격이 없도록 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금리산정 체계 개선 방향에 대해선 "은행 산업의 구조적 특성상 완전한 경쟁 체제로 만들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면서 "과거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사례 당시 등 국내외에서 여러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과거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개선 방향을 논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횡재세(금융위기, 에너지 위기 시기에 폭발적 이익을 거둔 기업들에 부과하는 세금)'와 관련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정책적 논의가 나오면 살펴볼 수 있다"며 "기획재정부와 세무 당국의 입장이 제일 중요하다"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횡재세 논의를 촉발하게 된 여러 금융을 둘러싼 여건이 있고, 변화를 위한 저희의 노력이 있는 만큼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거기(횡재세)까지 논의가 안 갈 수도 있지 않나 하는 바람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