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이었다. LG의 방계기업 희성이 출범한지 21년이 흐른 2017년 9월의 일이다. 계열분리 전(前) 일찌감치 후계자를 계열 지배구조의 가장 높은 곳에 대주주로 올려놓는 작업은 이 딜로 마무리됐다. 게다가 ‘참 쉽쥬!’라는 말 내뱉을 법 하다. 대주주 지분을 사고파는 거래였지만 돈이 오고가지 않았다.
돈 오고가지 않은 4820억 ‘빅딜’
엘티(LT)그룹이 출범한 것은 2019년 1월. 하지만 LG 오너 3세 구본능(73) 회장의 ‘희성’과 막내동생 구본식(64) 회장의 ‘LT’가 사실상 계열분리된 것이 앞서 1년여 전(前)인 2017년 9월이다.
우선 희성그룹 주력사 희성전자는 건설 계열사 삼보이엔씨(현 LT삼보) 지분 93.5%를 매각했다. 인수자가 구본식 회장과 부인 조경아씨 사이의 1남2녀 중 장남 구웅모(33)씨였다. 각각 45.3%, 48.2%다.
반면 4820억원이나 되는 딜이었지만 희성전자는 현금을 받지 않았다. 대신에 오너 구본능 회장(42.1%)에 이어 자사의 2, 3대주주로 있던 구본식 회장 부자(父子)의 지분을 정확히 4820억원어치 26.2%의 지분을 자사주식으로 인수했다.
특히 구본식 회장은 당시 지분이 29.4%나 됐지만 절반에도 한참 못미치는 12.7%만 넘겼다. 이외에 희성전자에 매각한 13.5%는 바로 구웅모(33)씨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전량이었다.
후속으로 연쇄적인 계열 분할이 이뤄졌다. LT삼보가 희성금속(LT메탈)과 희성정밀(LT정밀)을 계열 편입한 게 이 무렵이다. LT메탈은 1974년 5월 LG와 일본 다나까귀금속공업 55대 45 합작으로 설립된 법인으로, LT삼보가 지분 33.0%를 776억원에 인수해 다나까귀금속공업(45%)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섰다.
구본능 회장(28.0%)을 비롯해 구광모(44) LG 회장(3.02%), 구본능 회장의 누나 구훤미(75)씨(1.5%), 구훤미씨의 맏딸이자 이해욱(54) DL그룹 회장의 부인 김선혜(51)씨(0.5%) 등이 당시 LT메탈 지분을 내놓은 주주들의 면면이다.
LT정밀의 경우는 LT삼보가 1대주주 구본능 회장(43.3%)과 3대주주 희성전자(17.9%)로부터 지분 총 61.2%를 948억원을 주고 매입,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이에 더해 LT정밀은 희성전자로부터 희성소재(LT소재)의 지분 100%를 364억원에 사들여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현재 LT의 후계자 구웅모씨가 LT삼보의 단일 1대주주(48.28%)로서 LT삼보→LT메탈·LT정밀→LT소재로 연결되는 계열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품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다. 무자본 지분 맞교환 단 한 번으로 족했다.
대물림에 요긴하게 쓰인 본가 LG 주식
세금 이슈도 있었을 테지만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는 양도소득세가 따라붙는다. 비상장주식의 경우 1년 미만 보유한 중소기업 외의 주식을 양도하면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외에는 과세표준에 따라 3억원 이하면 20%, 3억원을 초과하면 25%가 매겨진다.
구웅모씨가 희성전자로부터 LT삼보 지분 48.2%를 받는 대가로 희성전자 지분 13.5%를 넘긴 가격은 2480억원이다. 정확한 액수야 알 길 없지만,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범위로만 봐도 2002년부터 소유해왔던 주식이다 보니 상당한 매각차익이 생겼을 것이고, 적잖은 양도세가 부과됐을 게 뻔하다. 하지만 본가 LG 계열 주식으로 거뜬히 해결했을 수 있다.
LG 구(具)씨 일가는 다손(多孫) 집안으로 일가들이 본가(本家) 주식을 골고루 나눠 보유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방계 집안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지주회사 ㈜LG만 보더라도, 3대 고 구본무 회장에 이어 4대 경영자인 구광모 회장(지분 16.0%․특수관계인 포함 45.9%) 외에 ㈜LG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일가가 현재 24명이나 된다.
구본식 회장 일가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구 회장의 3남매가 보유 중이던 ㈜LG 지분 0.77%와 LG상사(현 LX인터내셔널) 0.99%를 전량 시장에 내다 판 적이 있다. 2017년 7~9월로 희성전자와 LG삼보의 지분 맞교환이 있을 무렵이다.
3남매가 지분 매각을 통해 현금화한 자금이 ㈜LG 1030억원, LG상사 113억원 도합 1140억원이나 됐다. 구웅모씨가 손에 쥔 자금이 801억원에 달한다. 구연승씨와 구연진씨도 각각 308억원, 34억원가량을 챙겼다.
LG 계열 주식, 참 요긴하게 쓰였다. 희성전자가 LT삼보 지분을 매각할 때 LT정밀과 희성화학 또한 LT삼보 3.5%를 180억원에 넘겼는데, 인수자가 구본식 회장의 두 딸이다. 현재 각각 3.22%, 0.52%의 지분을 가진 주주로서 LT삼보의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주된 이유다.
아울러 둘째딸은 현재 LT삼보(61.18%), 구본식 회장(32.65%)에 이어 LT정밀의 지분 6.17%를 소유 중이다. LT삼보가 LT정밀을 계열편입할 당시 구 회장이 지분을 넘겨준 데서 비롯됐다. 이래저래 2017년 7~9월 LG 계열 주식매각자금이 활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