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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줍줍]국민연금은 왜 대표소송을 준비하나

  • 2022.01.26(수) 16:00

오늘 공시줍줍의 주제는 대표소송입니다. 시사상식 수준에서 대표소송을 이해하려면 인터넷포털 검색창에 검색해보면 바로 나오죠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경우에 개개의 주주가 회사에 갈음하여 제기하는 소" (인터넷포털 법률용어사전)

이 정도면 설명으로 '내가 투자한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확실한 판단이 내려지시나요.

최근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준비한다는 이슈가 불거지고 있는데요. 많은 언론 기사를 보면 국민연금이 뭔가 대단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기업간섭이나 기업 벌주기에 몰두하는 듯한 뉘앙스의 기사가 무척 많은데요.

오늘 공시줍줍에서는 '과연 그럴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이슈…무슨일 있었나

먼저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관련 이슈를 간단히 리뷰해보고 시작해볼까요.

작년 말 국민연금은 약 20개 기업에 문서를 보냈어요. 문서 제목은 '사실확인서'. 이 문서의 정체는 무엇이냐. 수많은 기업에 투자 중인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내용을 관찰해야 하죠.

일반주식투자자도 그렇듯 국민연금도 언론보도나 공시내용 등 여러 가지 경로로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하는데요. 하지만 회사에 직접 물어보지 않고, 또는 회사가 답변해주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아요. 

예를 들어 어떤 상장회사가 입찰 담합 적발로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볼게요. 회사가 불복소송을 제기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공정위의 처벌을 법원이 인정하면 과징금을 내야겠죠. 여기까진 담합을 적발하고 징계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하고, 언론의 후속보도도 나오죠. 

그러나 이후 회사가 어떤 후속 조치를 했는지는 알기 어려워요. 담합주도자들이 회사에 수백억원의 재산 손실을 끼친 것인데 이 사람들은 어떤 사후 책임졌는지 알 수가 없죠. 특히 이런 일을 제대로 사후처리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재발할 수 있고, 결국 기업가치 훼손, 더 나아가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주주가치에 좋지 않은 일이 되겠죠.

담합을 예로 들었지만, 배임·횡령 사건도 마찬가지. 범죄자가 한 명이건 여러 명이건 회사에 손실 끼친 사람이 있겠죠. 그럼 회사는 배임·횡령 행위자들을 징계하거나 피해 보상을 요구해야겠죠. 그런데 회사가 이런 사후조치를 했는지 안 했는지 공개자료로는 알기 어려워요. 

따라서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보낸 '사실확인서'라는 문서는 회사에 재산상 손실을 끼친 사람들을 어떻게 사후조치했는지 질문하는 내용이에요.

국민연금은 이런 문서를 보내면서 "우리가 이런 질문하는 건 회사가 적절히 조처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대표소송을 할지도 모르니 사전조사하는 것"이라는 질문 취지를 함께 적어서 보내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언론의 보도가 나왔는데요.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어요. 

국민연금이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 기업 역시 국제적 망신 초래

국민 노후자금으로 주주노릇하면서 국민의 이름으로 경영간섭을 정당화하는 건 '연금 사회주의'

대표소송으로는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없고, 오히려 호재 없이 경쟁기업의 주가만 높이는 결과 낳을 것

이런 기사의 내용은 지나치게 일방적 주장 또는 사실관계 자체를 왜곡하는 내용이라는 게 공시줍줍의 판단. 어떤 점에서 이런 기사들이 잘못되었는지는 뒤에서 다시 정리해보기로 하고, 이제 대표소송이 무엇인지 한 걸음 더 알아볼게요.

 한 번만 알아두면 쓸모있는 대표소송 개념

대표소송은 이사진의 불법행위(입찰담합, 배임횡령, 계열사 부당지원 등)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나오는 개념. 이때 발행주식총수의 0.01%(비상장회사는 1%)를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들은 회사에 먼저 불법행위를 한 이사진을 상대로 책임추궁을 하라고 요구해요.

만약 주주들의 요구에도 회사가 응하지 않으면, 이때 주주들이 회사를 대신(대표)해 직접 불법행위를 한 이사진을 대상으로 소송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대표소송.

대표소송에서 정말 중요한 내용은 일반적인 손해배상소송과 다른 특징인데요. 

회사를 대표해서 주주가 제기하는 소송이어서 주주와 회사 간 소송이 전혀 아니라는 점! 주주와 불법행위 이사진 사이의 소송이라는 점!
 
따라서 소송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내야 하는 책임은 회사가 아니라 불법행위 당사자인 이사진에게 있다는 점, 무엇보다 소송 특성상 원고(소송 제기한 주주)가 소송에서 이겨도 손해배상금은 원고가 아닌 회사의 몫이라는 점. 반면 원고(소송 제기한 주주) 패소 시에는 소송비용은 원고 몫이라는 점. 

결과적으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는 소송에서도 이겨도 본인들에게 당장 직접 돌아오는 이익이 없고, 패소하면 소송비용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 그래서 대표소송을 공익소송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소송을 제기한 주주 입장에서 당장 본인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지만, 이사진의 불법행위에 경종을 울리고 회사가 입은 손해액을 복구시킨다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죠.

일부에선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에 나서면 다른 이들까지 부추겨서 '소송 공화국'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들은 적잖은 시간(통상 소송 기간이 5~10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무턱대고 소송을 제기할 수 없어요.

[추가 포인트] 

주주대표소송: 본인이 주식 가진 회사의 이사진 대상
다중대표소송: 본인이 주식 가진 회사(모회사)가 지분 50% 이상 가진 자회사 이사진 대상.

대표소송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카카오톡 형식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봤어요.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대표소송 어떻게 진행되어왔나

주주대표소송은 1962년 우리나라에서 상법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도입한 내용. 그러나 소송 자격(지분율 5% 이상 주주)이 너무 엄격해 30년 이상 사문화된 조항이었어요. 외환위기를 거치며 1998년 소송 자격이 완화(상장회사 지분율 0.01% 이상 6개월 보유)되면서 조금씩 나타났는데요.

경제개혁연대에서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1년간 우리나라에서 있는 대표소송 판결내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 기간 판결이 내려진 대표소송은 총 137건이고 이 가운데 상장회사 소송은 47건, 비상장회사는 90건.

얼핏 숫자가 많아 보이지만 21년간 통계라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려주시고요. 그래서 한 해 평균 6.5건, 상장사만 놓고 보면 한 해 평균 2.2건 수준이죠.
 
이 가운데 전부각하(소송요건 불충족, 부적합) 40건 제외하면 실제로는 97건에 판결이 내려졌는데요. 97건 중에서 원고(소송 제기한 주주)가 일부라도 승소한 판결은 44건(전부인용 8건, 일부인용 36건)으로 원고 승소율 45%, 나머지 53건은 원고가 패소한 사건.

이러한 통계를 보더라도 주주 대표소송은 빈번하게 나타나기 어렵고, 설령 요건을 충족해 소송하더라도 원고(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소송이죠.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는 소송에서도 이겨도 본인들에게 당장 직접 돌아오는 이익이 없고, 패소하면 소송비용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번 떠올려주시고요.

그동안 어떤 내용으로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됐는지 실제 판례를 그래픽으로 모아봤어요. 

[그래픽에 나오는 용어설명] 

①청구금액: 주주들이 피고(불법행위 이사진)가 회사 측에 손해배상 해야 한다고 주장한 금액
②인용금액: 법원이 피고(불법행위 이사진)가 회사 측에 손해배상 해야 한다고 판결한 금액
③인용비율: 주주들이 주장한 청구금액 대비 법원이 인정한 금액의 비율 
④인용된 청구원인: 대표소송의 원인이 된 피고의 행위 가운데 법원이 피고의 책임있다고 본 행위

위의 그래픽에는 나오지 않지만, 최근에도 주주 대표소송이 진행 중인 대표적 사례가 대우건설인데요. 

대우건설은 4대강 입찰, 영주다목적댐입찰 등에서 담합행위가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82억원의 과징금 부과받았어요. 담합행위로 인한 과징금을 회사가 물어야 했지만, 이후 아무도 손해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자 2014년 경제개혁연대는 대우건설 소액주주들과 함께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했어요. 

소송을 제기한 지 6년만인 2020년 9월 1심 판결이 나왔는데 대우건설 전 대표이사에 4억8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죠. 회사는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했는데 고작 4억8000만원만 회복할 수 있다는 이 판결에 주주들은 항소를 결정했어요. 

2021년 9월 항소심에서는 전 대표이사뿐 아니라 더 많은 대우건설 이사진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1심보다 조금 많은 5억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어요. 주주들은 법원이 이사진 책임을 인정한 것은 환영하지만, 회사가 입은 손해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한 것은 손해보전 효과가 없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법원에 판결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는 '대법원 상고' 절차를 밟고 있어요.

국민연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국민연금은 투자기업 20여 개에 사실확인서를 보냈고요. 나중에 답변을 받으면 불법행위를 한 이사진에 대한 회사의 조치가 있었는지, 그 조치가 합리적이고 적절했는지 검토하겠죠.

그리고 만약 회사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주주 대표소송 제기를 검토할 수 있어요. (물론 대표소송에 앞서 회사가 먼저 불법행위 이사진의 책임추궁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하는게 먼저)

국민연금의 주주 활동 기준을 담은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을 보면, 국민연금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진 이후에야 대표소송 여부를 결정하는데요.

①이사 등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기업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했음이 관련 소송의 판결에서 확정되었는지 여부
②이사 등의 위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발생한 손해액이 관련 소송의 판결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거나 객관적으로 산출 가능한지 여부
③기업이 자체적으로 손해보전에 필요한 충분한 조처를 하고, 그에 따라 제소의 실익에 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여부

이 얘기를 다시 정리하면 ①이사진의 잘못을 인정한 객관적 판단(법원 판결 등)이 있고, ②그로 인해 회사가 입은 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됨에도 ③회사가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는 상황이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이죠. 이 경우에 국민연금은 잘못한 이사진이 회사에 입힌 손해를 배상하게끔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주주 대표소송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연금가입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게 아닐까요. 물론 아무리 국민연금이라도 소송에서 지면 부담이 있어서 이런 조건과 함께 승소 가능성, 소송 비용 대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얘기. 

오늘 공시줍줍에서 살펴본 주주 대표소송(feat. 국민연금) 어떠셨나요. 

대표소송은 좌파, 우파의 이념 문제가 아니에요. 법이 보장하는 주주의 권리이자 자본시장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 앞으로 국민연금 관련 대표소송 이슈가 나올 때, 많은 언론보도가 담은 시각과 다른 좀 더 균형 있는 관점에서 바라볼 준비가 되셨나요. 

마지막으로 주주대표소송이 담고 있는 독특한 개념과 판례 등을 알아봤으니, 초반에 살펴본 언론 기사로 돌아가서 왜 언론 기사가 잘못된 주장을 담고 있는지 공시줍줍의 반론을 하나씩 정리해볼게요. 

①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 기업 역시 국제적 망신 초래

-공시줍줍의 생각: 주주 대표소송은 물론 주주권행사가 일반화되어있는 미국 등 소위 선진금융시장의 기업은 다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봐야 할까요? 

②국민 노후 자금으로 주주 노릇하면서 국민의 이름으로 경영간섭을 정당화하는건 '연금 사회주의'

-공시줍줍의 생각: 국민 노후 자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기업을 모니터링하고, 질문하고, 불법행위 이사진의 책임을 묻는 건 연금사회주의가 아니라 연금자본주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③대표소송으로는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없고, 오히려 호재 없이 경쟁기업의 주가만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

-공시줍줍의 생각: 대표소송은 불법행위 저지른 이사진에게 책임 묻는 것이지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아니죠. 불법행위 저지른 이사진이 회사에 입힌 손해를 물어내도록 요구하고,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듦으로써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게 대표소송의 취지! 오히려 불법행위 저지른 이사진에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예전처럼 일하도록 하는 것이 기업가치 떨어뜨리는 일 아닌가요?

마지막 포인트!

주주 대표소송은 어느 공시에 나오나요?

주주 대표소송은 회사가 피소당한 소송(ex 발행주식의 효력을 다투거나, 임원 선·해임 등 경영권소송)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이라는 제목으로 수시공시하는 항목은 아니에요. 다만 '투자판단관련 주요경영사항' '기타경영사항'이라는 제목의 공시로 알리고, 회사가 발표하는 정기보고서(사업보고서, 반기보고서 등) 항목 중 '이사회에 관한 사항'에서 '소수주주권' 행사 내역을 밝히도록 되어 있어요. 이 항목에서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요. 

*독자 피드백 적극! 환영해요. 궁금한 내용 또는 잘못 알려드린 내용 보내주세요. 열심히 취재하고 점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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