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재 중견그룹 한일시멘트의 ‘허(許)’씨 일가들이 홀딩스 지분을 사들이며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3대 경영자 허기호(58) 회장에 이어 서열 2위인 동생과 허 회장의 자녀들이다. 먼 훗날 일이기는 하나 공교롭게도 선대(先代)에서 보여줬던 ‘형제 승계’냐, 아니면 바로 종손(宗孫)으로 바통이 넘어가는 ‘4대 직행’이냐를 놓고 주목받는 이들이어서 흥미롭다.
‘2인자’ 허기수, 지주 전환 후 첫 매입
27일 한일홀딩스에 따르면 최대주주인 오너 허기호(58) 회장 및 특수관계인(17명) 지분이 이달 중순 68.60%에서 69.65%로 1.05%p 확대됐다. 일가 3명이 블록딜을 통해 매입한 데 따른 것으로 액수로는 39억원(주당 1만2010원)어치다.
허 회장의 둘째동생 허기수(54) 한일시멘트 부회장이 0.5%(19억원)를 인수했다. 허 회장의 1남1녀 중 장남 허준석(27)씨와 장녀 허지수(24)씨도 각각 0.25%(9억원), 0.29%(11억원)를 사들였다.
허 부회장은 현재 한일시멘트그룹의 ‘2인자’다. 즉, 장남인 허 회장은 지주 대표와 주력 사업분야인 시멘트 2개 계열사 중 한일현대시멘트 사내이사, 허 부회장은 한일시멘트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다. 허정섭(85) 명예회장의 아들 3형제 중 장남과 3남이 분할·경영하는 그림이다.
한일시멘트 계열 지배구조의 중추 홀딩스에 대한 허 부회장의 지분 확충은 2018년 7월 모태기업 옛 한일시멘트를 한일홀딩스(존속·지주)와 현 한일시멘트(신설·사업)로 쪼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이래 처음이다.
반면 오랜만의 보강이기는 하지만 현 지분이 1.65%에 불과하다. 허 회장이 2005년 1월 경영일선 등장 이래 옛 한일시멘트 지분 1.84%에서 시작해 현재 31.23%까지 끌어올리며 그룹 장악에 공을 들여왔던 것과 달리 허 부회장은 지배기반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결국 경영 활동과 달리 홀딩스 지분만 놓고 보면 허 부회장의 존재감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선대에서처럼 3대에서도 ‘형제 승계’가 이뤄질 지 여부에는 여전히 의문부호 세례가 쏟아진다는 얘기도 된다.
한일시멘트는 2대에 이르러 고(故) 허채경 창업주의 5남1녀 중 ‘섭(燮)’자 돌림의 ‘정·동·남’ 형제 승계가 이뤄진 바 있다. 1992년 장남 허정섭→2003년 3월 3남 허동섭(76)→2012년 3월 4남 허남섭(73) 명예회장이 차례로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종손 허준석, 20살 때 4세 중 첫 등장
결국 이런 맥락에서 보면, 향후 허 회장에 이어 과도기적인 막냇동생 회장 체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보다는 바로 4대로 가업 세습이 이뤄질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허 회장의 자녀들의 지분 인수를 예사롭게 볼 수 없는 이유다. 현재 홀딩스 오너 일가 주주 중 4세는 준석·지수 남매뿐이다.
허준석씨가 한일홀딩스의 전신, 옛 한일시멘트 주주로 등장한 때가 2017년 9월이다. 허 회장이 2016년 3월 회장직을 승계한 데 이어 이듬해 4월 최대주주로 부상했던 해다. 허 회장이 ‘1인 체제’를 구축하는 와중에도 대물림을 위해 사전정지작업에 나선 것을 볼 수 있다.
허준석씨는 장내에서 13억원을 들여 주식 0.13%를 매입했다. 이어 2018년 7월 지주 전환 당시 현물출자·유상증자에 참여해 0.30%로 확대했다. 12월에 가서는 계열 주주사로 있던 중원㈜로부터 0.23%를 8억원에 매입했다.
중원㈜는 허 회장이 1대주주(33.96%)로 있었던 곳이다. 중원㈜는 2018년 12월 홀딩스 지분 9.01% 중 6.43%를 총 236억원에 오너 일가 3명에게 넘겼는데, 허 회장(5.80%․213억원) 외에 허준석씨 등에게도 매각했던 것. 이어 5년여만의 지분 확대로 0.82%를 보유하게 됐다.
비록 오빠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허지수씨의 경우는 2020년 2월 장내에서 5억원가량을 주고 0.21%를 매입해 줄곧 보유해 왔다. 이어 최근 추가 취득으로 0.5%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