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진단업체 씨젠(Seegene) 천(千)씨 일가가 쉼 없이 주식을 내다 팔았다. 사주(社主)인 천종윤(67) 대표의 삼촌이자 창업 초기 후원자로도 잘 알려진 천경준(77) 회장 일가가 주류다.
외손주들은 170억원의 주식을 증여받자 곧바로 한 명도 예외 없이 절반 넘게 팔아 세금을 물었다. 부인은 주식 매각으로 360억원을 손에 쥔 뒤 최근까지도 차익실현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천경준 회장 일가 무더기로 121억어치 매각
2일 씨젠에 따르면 오너이자 최대주주인 천종윤 대표(18.21%)는 지난달 말 ‘5% 지분변동 신고서’를 통해 소유지분이 특수관계인(31명)을 합해 31.04%에서 30.14%로 축소됐다고 밝혔다.
친인척 11명이 무더기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거의 매달 장내에서 1.00%(52만801주)를 처분한 매매내역이 담겨 있다. 액수로는 122억원(주당 평균 2만3400원)어치다.
천경준 회장 일가가 주된 매각 주체다. 부인 안정숙(74)씨 0.26%(13만3482주), 외손주 7명 0.73%(38만1719주) 총 0.99%(51만5201주)가 이들의 매각 물량이다. 이를 통해 121억원을 손에 쥐었다.
천 회장은 2000년 9월 천 대표가 씨젠을 창업할 당시 자금 지원 등 경영에 깊숙이 참여했던 후원자다. 반면 2011년 3월 사내이사에서 비상무이사가 된 뒤로는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뗐다. ‘회장’ 직함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명예직이다.
씨젠 소유지분도 대폭 축소된 상태다. 천 회장은 2010년 9월 씨젠 상장 당시 천 대표(32.69%)에 이어 단일 2대주주로서 14.71% 소유했다. 지금은 3.54%뿐이다. 2015년 2.8%를 매각해 268억원을 손에 쥐었다. 특히 대부분 주식을 세 딸 천혜영(47), 천미영(46), 천시영(44)씨와 친인척 등에게 증여해줬다.
천 회장 직계가족들의 연쇄적인 주식 매각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고 볼 수 있다. 손주들이 할머니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자마자 모두 단기간에 대거 현금화했기 때문이다. 증여세와 맞물려 있다.
외손주들 증여받자마자 89억 현금화
천 회장의 외손주들이 씨젠 주주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때는 작년 5월 말이다. 당시 나이 적게는 3살, 많게는 17살의 변정우·이유준·육서연 등 7명이다. 천 회장의 부인 안정숙씨가 지분 3.01% 중 1.34%(70만주)를 각각 0.19%(10만주)씩 증여해 준 데서 비롯됐다. 당시 시세로 169억원어치다.
조부모가 손주들에게 직접 증여한 ‘세대생략증여’다. 세대를 건너뛰면 증여세를 한 번만 내면 되기 때문에 할증해서 더 걷는다. 할증과세다. 통상 산출세액의 30%다. 다만 미성년자가 20억원을 넘게 물려받으면 40%가 붙는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상 증여재산이 상장주식이면 증여일 기준으로 전후 2개월 총 4개월 치의 최종시세 평균값으로 재산가액이 매겨진다. 증여 당시 주가로 따져 보면, 손자 1인당 과세표준은 대략 29억원으로 추산된다. 상증법상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주식이면 증여재산이 20% 할증되는 데 따른 것이다.
증여세 과세표준 10억~30억원은 세율이 40%다. 산출세액은 12억원에서 누진공제(1억6000만원)를 뺀 약 10억원이다. 여기에 40%를 가산하면 손자들의 1인당 증여세는 어림잡아 14억원이다.
외손주들이 처분한 액수와 얼추 맞아 떨어진다. 이들은 증여받자마자 작년 7월~10월에 걸쳐 1인당 증여주식의 절반가량인 0.1%(5만5000주)씩을 13억원에 매각했다. 도합 89억원어치다. 따라서 증여세 신고․납부를 위해 증여주식을 매각했다는 얘기가 된다.
천 회장의 부인의 경우는 차익실현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씨젠 상장 당시 3대주주로서 7.35%를 소유했던 안씨는 작년 2월까지 주식 매각으로 363억원을 챙겼다. 이어 작년 10월 중순부터 지난달 말까지 31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