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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일자리]③'93만개' 집착 버려라

  • 2013.11.19(화) 13:29

MB정부 고졸 채용의 변주곡
숫자보다 질적측면 고려해야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라는 표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판단, 현재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민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늘려, 전체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일자리 확산을 위한 정부의 정책, 업계의 반응, 해결과제와 국내외 사례 등을 정리해 본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공공부문 1만7000개 생긴다
②삼성의 6천개, 마중물 될까
③'93만개' 집착 버려라
④고용률 73%, 독일의 교훈

 

데자뷰(deja vu, 기시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에도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최근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을 놓고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 정부의 데자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자리 확대는 어느 정부나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다.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때 마다 고용확대를 위한 각종 공약들이 제시된다. '고용률 70%'라는 공약도 여기서 출발했다. 그리고 93만개에 달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그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수단중 하나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과거 이명박 정부의 고등학교 졸업자 채용 확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교 이상 졸업자=정규직'이라는 공식을 깨야 한다며 고졸 출신 채용을 독려했고, 공기업은 물론 금융권과 기업들은 떠밀리듯 채용에 나섰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고졸 채용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분위기다.

 

정부가 추진중인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에 대한 우려도 이같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고용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성공하기 위해선 당장 만들어지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 '질' 높은 시간제 일자리?

 

지금도 시간제 일자리는 엄연히 한국 고용시장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시간제(파트 타임) 근로자는 지난 2003년 92만9000명에서 지난해 182만6000명, 올해는 188만300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체 임금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6.6%에서 2013년 10.3%까지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늘어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다. 우리금융연구소는 전체 시간제 일자리중 91.6%가 임시·일용직이라고 밝혔다. 상용형태의 시간제는 8.4%에 불과했다. 또 시간제 일자리들은 취약계층이나 저숙련 직종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시간당 임금이나 사회보험 등에서도 다른 비정규직에 비해 열악하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다. 때문에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개념을 내놨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근무하면서 시간당 임금이나 각종 복리후생에서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이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야 하는 민간의 입장에서 이같은 일자리는 비용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기준 시간제 근로자 182만6000명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연간 약 7조2000억원의 부담이 발생한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현대연구원은 "민간기업 입장에서 양질의 시간제 근로자보다 전일제 비정규직 근로자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도 이같은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내놨다. 김 위원장은 최근 세미나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근로시간 단축 등을 초기임에도 '양질'의 일자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정규직을 늘리기 어려운 만큼 정부에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그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보조적일 수밖에 없는데 마치 한순간에 정착이 되고 좋아질 것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국민에게 큰 환상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숫자에 대한 집착 버려야

 

한국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일제 근로자의 비중이 높고, 근무시간 역시 많다. 때문에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시장 저변 확대와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 자체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다만 지나치게 목표치에만 집착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노동계가 제기하는 우려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은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률 70%를 나쁜 일자리로 채우려는 비정규직 양산 계획"이라며 "일자리는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지난 6월 정부의 로드맵 발표 당시 "의지의 과잉과 전망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금융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고용률 70%라는 숫자에 집착해 고용의 질적 측면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경우 고용시장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존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 일자리의 전반적인 질을 향상시키는데 우선 주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되 민간부담을 줄이기 위해 점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생산성 향상 대책과 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시간제 근로자의 생산성이 정규직 수준에 도달해야 기업 입장에서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할 유인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또 민간기업의 부담이 급격하게 늘지 않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비정규직 차별 해소방안을 만드는 등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차근차근 실행할 필요가 있다"며 "5년내 93만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무리하다보면 의도와는 달리 나쁜 일자리를 양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환 위원장도 정부가 숫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간선택제, 근로시간 단축제 등은 처음 시작할 때 양적으로는 적더라도, 섬세하고 부드럽게 접근해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며 "수치에 연연해 부처 할당식으로 시간선택제일자리를 늘리려는 관료주의적 접근은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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