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착에 애를 먹고 있다. 구직자와 ①직무 ②거리 ③시간 등에서 충돌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은 이 같은 미스매치(불일치)를 줄일 수 있는 맞춤형 일자리 발굴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그룹은 17일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자 중 최종합격자는 1500명으로, 지원자가 예상보다 적어 추가 모집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채용 규모 1500명은 당초 삼성이 계획했던 수준(6000명)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삼성은 이달 24일부터 시간선택제 일자리 2차 채용에 나선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말 결혼·육아·가사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과 55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하루에 4~6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을 받았다.
◇ 미스매치①직무
CJ, 신세계 등 유통업종과 달리 삼성의 시간선택제 일자리에는 구직인력이 적게 몰렸다. 삼성그룹의 주력 업종인 정보기술(IT) 업종과 경력단절 여성들이 희망하는 직무 사이의 미스매치 때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개발 분야를 지원한 경력단절 여성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고 말했다. 경력단절 여성들은 주로 사무·서비스지원 업무를 원한다. 지난해 7월 CJ그룹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에는 150명 모집에 2530명(17대 1)이 몰렸다. 특히 CJ올리브영 사무지원(총무), CJ오쇼핑 패션제품 체험컨설턴트 등은 2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 미스매치②거리
직장과의 거리 등 물리적 제약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삼성의 사업장은 주로 수도권에 있어 출퇴근에 부담을 느끼는 지원자가 많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서울지역 거주자의 경우 출퇴근에 2~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6시간짜리 일자리를 선택할 경우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정규직(8시간)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미스매치③시간
또 오전시간 지원자가 오후시간 지원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1차 합격자 가운데서도 60%가 오전 근무에 지원했다. 경력단절 여성 중 상당수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하교하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취업시 가장 걱정되는 것(CJ그룹 설문조사 결과)으로 ‘가사와 육아’(54.9%)를 꼽았다. ‘업무성과 미흡’(24.9%),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17.7%) 등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수시 채용을 통해 당초 목표로 한 시간선택제 채용 규모(6000명)를 채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열사별로 ▲삼성전자 2700명 ▲삼성디스플레이 700명 ▲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삼성물산 각 400명 ▲삼성생명 300명을 뽑는다. 직무별로는 ▲사무지원 1800명 ▲개발지원 1400명 ▲환경안전 1300명 ▲생산지원·판매서비스·특수직무 등 각 500명씩 채용한다. 이들은 우선 2년 계약직으로 고용된다. 2년 근무 후 일정 수준의 업무능력을 갖추면 지속 고용을 보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