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사 얽힌 3800억 지분거래
같은 날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지분 6.4%(740만주)를 2640억원(주당 3만5700원)에 사들였다. 삼성전기(3.8%), 삼성물산(2.5%), 삼성중공업(0.03%) 3개사가 보유하던 지분이다. 삼성생명은 이를 통해 삼성카드 지분을 34.4%(3987만주)로 늘려 삼성카드의 현 최대주주(37.5%)인 삼성전자와의 지분 격차를 3%포인트 남짓으로 좁혔다.
삼성그룹은 이번 지분거래가 계열사간 협업 강화(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와 안정적 투자수익 확보(삼성생명-삼성카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순환출자 구조를 보다 단순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구조가 골격이지만, 이외 상당수 계열사간에도 순환출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이번 계열사간 지분이동은 순환출자의 ‘잔가치 치기’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삼성생명이 제조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사들이면서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 분리 작업도 힘을 받는 모양새다.
나아가 삼성그룹이 이달 2일 정기 인사와 조직개편을 마무리 짓자마자 계열사 지분을 대거 이동시킨 것은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43)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40)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등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와도 연관성을 가진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는 후계구도 및 계열분리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말 3남매의 큰 폭의 승진 인사를 신호탄으로 올해 9월부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계열사간 사업구획 조정은 본격적인 3세 분할경영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
◇2010년말 이후 꿈틀댄 ‘변화의 싹’
2010년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겸 삼성에버랜드 전무에서 사장으로,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이재용 사장이 부회장 자리에 앉았고, 올해 연말 인사에서는 이서현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를 놓고 예상되는 후계 분할구도의 대략적인 밑그림은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필두로 하는 IT와 금융은 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과 호텔신라로 대변되는 건설·리조트·유통은 이부진 사장,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과 제일기획으로 요약되는 패션과 광고는 이서현 사장이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는 올해 9월부터 제일모직 패션부문 양수를 추진해 이달초 마무리지었다. 이서현 사장이 삼성에버랜드로 자리를 옮기게 된 배경이다. 반면 현재 삼성에버랜드의 리조트·건설 부문은 이부진 사장이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겸하며 삼성에버랜드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이어 급식 및 식자재 부문을 ‘삼성웰스토리’로 물적분할했고, 내년 1월초까지 건물 관리사업을 에스원으로 넘긴다. 이재용 부회장이 각각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SDS(8.8%)는 삼성SNS(45.7%)를 연내에 흡수합병한다. 비록 막대한 자금부담 등을 이유로 여전히 완전한 후계분할 구도는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될 문제지만, 향후 이를 위해 ‘붙였다 뗐다’ 하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삼성생명의 이번 삼성카드 지분 인수 또한 금융 계열사에 혼재돼 있은 제조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리해 향후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을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권 아래로 원활하게 옮기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또한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던 삼성물산이 올 7월말부터 계속해서 지분을 사들이는 것을 놓고 양사간 합병설과 더불어 이부진 사장을 정점으로 한 건설부문 후계구도와의 연관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