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총을 계기로 김상헌 회장은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난다. 다음달 등기임원 임기가 만료되는 김 회장이 이례적으로 연임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동서의 사내이사진은 이창환 회장을 비롯해 이번에 선임되는 전문경영인 3명으로 채워지게 된다.
김 회장이 차츰 경영 일선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다. 동서그룹 창업주인 부친 김재명(92) 명예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은 시기인 2004년 3월 등기임원 선임과 함께 대표이사(각자대표)에 올랐던 그는 6년만인 2010년 3월 대표 자리에서 내려온 바 있다. 아울러 그의 행보는 경영 수업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던 장남 종희씨가 불과 1년전 갑작스레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뗀 것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서 지분율이 1% 남짓이던 종희씨는 30대에 접어든 2004년 김재명 명예회장으로 동서 지분을 물려받은 데 이어 2011~2012년에는 부친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4%가 넘게 증여받아 지분이 급격하게 늘었다.
또한 꾸준히 장내에서 사들여 현재 김상헌 회장(24%), 숙부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20%)에 이어 동서의 3대주주로서 9%가 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지분율 면에서 동서 오너 일가의 그 어떤 다른 3세들보다 멀찌감치 앞서 있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한 종희씨는 30대 중반 들어서는 회사 경영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동서에 입사한 뒤 기획관리부장을 거쳐 2011년 2월에는 상무이사로 승진해 경영지원부문을 맡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회사를 떠나 지금은 동서뿐만 아니라 동서식품 등 다른 계열사에도 전혀 몸담지 않고 있다는 게 동서의 설명이다.
따라서 후계 승계를 위해 나름 터를 닦아왔던 종희씨 못지 않게 김 회장의 등기임원 퇴임도 이례적이라 할 만 하다. 실질적으로는 그룹을 지휘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경영인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동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