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또 대립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LG전자 가전사업의 최고위 임원까지 얽히며 양쪽 모두 물러서기 쉽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 사장과 세탁기 담당 임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업무방해와 제물손괴, 명예훼손 등의 혐의다.
삼성의 수사의뢰에 대해 LG전자는 "흠집내기가 아니길 바란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당분간 양사의 갈등이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2015년 세계 가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냉장고와 에어컨 등의 분야에서 제품 스펙, 점유율 집계 등을 놓고 충돌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 삼성의 주장
삼성과 LG의 충돌은 이달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IFA 2014 전시회를 앞두고 시작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LG전자 임원들이 현지 매장에서 삼성의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 도어의 연결부(힌지)를 고의로 파손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결국 LG전자는 파손된 제품을 매입하며 양측의 1차 충돌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제품 파손의 당사자가 LG전자 가전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조성진 사장인 만큼 보다 명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것이 수사의뢰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조성진 사장이 지난 3일 베를린 유로파센터 슈티클리츠 매장에서 세탁기 도어 연결부를 파손하는 장면을 CCTV로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업체 최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올바른 경쟁질서 확립 차원에서도 진실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IFA 전시회에 선보였던 삼성 크리스털블루 세탁기 |
◇ LG의 반박
LG전자는 조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해당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살펴본 사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흠집내기가 아니길 바란다"는 반응이다. 또 검찰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LG전자는 "특정 회사 제품을 파손시켜 그 제품 이미지를 실추시킬 의도가 있었다면, 굳이 임직원들이 직접 그런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현지 매장은 일반 소비자들 누구든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살펴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해외출장시 경쟁사 제품 등을 살펴보는 것은 어느 업체든 통상적인 일이고, 국내외 제품들을 모두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다른 회사 세탁기들과 달리 유독 삼성 세탁기의 힌지부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주장이다.
LG전자는 "여러 회사 제품을 똑같이 살펴보고 나왔지만 해당 매장측에서는 임직원 방문 후 지금까지 어떠한 요구도 없었다"고 밝혔다.
◇ 재반박, 다시 또 반박
삼성전자는 LG전자의 입장에 대해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수위도 한층 높였다. 삼성전자는 "사과는 커녕 거짓해명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한 회사의 최고 임원이 제품을 파손시켜 놓고 떠난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LG전자가) 해당 매장측에서 지금까지 어떤 요구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독일 매장 측에서 9월5일 베를린 45구 경찰서에 고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실은 한국 사법기관에서 밝혀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반박에 대해 LG전자 역시 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LG전자는 "현재까지 LG전자 독일법인은 물론 본사도 매장측과 경찰당국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바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해당 매장의 요구가 없었다고 설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왼쪽)과 조성진 LG전자 사장 |
◇ 가전수장 자존심 대결..갈등 격화될 듯
삼성과 LG간 주장이 얽히면서 당분간 양측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삼성과 LG의 가전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들의 자존심 대결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세계 TV 시장 1위를 이끌고 있는 주역이고, 내년 가전시장 1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TV외에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사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유명 요리사들과 협업한 셰프컬렉션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도 그의 작품이다.
조성진 사장 역시 LG 내부에서 '세탁기 박사'로 불릴 만큼 해당 분야에서는 1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고졸 출신으로 세탁기 분야에 매진해 왔고, LG전자 브랜드인 '트롬'을 세계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조 사장 입장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파손시켰다'는 오명을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처럼 이번 갈등이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과 조성진 LG전자 사장의 자존심과 연결된 만큼 소송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삼성과 LG 모두 세계시장에서 해외업체들과도 경쟁하고 있는 만큼 소모적인 충돌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