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에 힘입어 부활하고 있는 일본기업과 가격과 기술 모두 턱 밑까지 추격한 중국기업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부단한 혁신을 통해 위기를 퀀텀 점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주요 기업들의 전략과 사업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항공산업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침(浮沈)이 심하다. 경기가 좋아야 항공여객 수요가 늘고, 유가가 낮아져야 비행기를 띄우는 데 들어가는 돈이 줄어든다. 환율이 떨어지면(원고) 내국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발길이 늘지만 반대로 해외에서 국내를 찾는 발길은 줄어든다. 자칫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테러 등으로 국제정세가 불안해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도 항공업이다.
대한항공은 이런 '천수답(天水沓)' 경영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항공우주사업을 키우고 있다. 승객·화물을 실어 나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항공기를 설계하고 제작하며 항공기를 정비하는 역량까지 갖춰 경기 부침의 리스크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대한항공은 최근 각광받는 무인기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 군용 무인기 양산..드론사업도 시작
지난 11일 방위사업청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주재로 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육군과 해병대 사단의 공중감시정찰 능력 보강을 위해 약 2900억원을 투입하는 '사단정찰용 무인항공기' 초도생산사업 계획을 의결했다. 이 계획을 통해 국산 무인항공기 15대가 내년부터 2020년까지 전력화된다.
이 무인기는 폭 4.2m, 길이 3.4m, 높이 0.9m의 소형 기종으로 활주로뿐 아니라 발사대를 통해서도 이륙할 수 있다. 주야간 짧은 거리의 활주로에 자동착륙도 가능하다. 무인기에 달린 전방주시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은 지상 통제실에서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무인기는 최근 군의 운용시험 평가에서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전술급 무인기는 대한항공이 주관해 2010년 11월부터 4년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대한항공이 2004년 산업부의 근접감시용 무인항공기 개발사업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무인기 사업에서 11년만에 거둔 결실이다.
대한항공은 이뿐 아니라 헬기처럼 뜨고 내릴 수 있는 '틸트로터' 무인항공기(KUS-VT)도 개발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면서도 고정된 날개를 단 항공기의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어 민간이나 군에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기종이다. 해안·산불 감시나 원양어선의 어군 탐지용, 군의 원거리 감시정찰 및 표적획득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또 5톤급 대형 고성능 전략 무인항공기도 개발중이다. 기본적인 감시정찰뿐 아니라 높은 고도에서 30시간 이상의 장기 체공이 가능해 통신중계, 전자전, 광대역 해상 감시 등의 임무에 활용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이런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세계 고성능 무인항공기 개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또 지난달 말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무인비행장치(드론) 활용 신산업 분야 안전성 검증 시범사업'의 대표사업자 15곳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드론을 이용해 ▲물품 수송 ▲산림보호 및 산림재해 감시 ▲시설물 안전관리 ▲통신망 활용 무인기 제어 등 4개분야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서울항공우주박람회에 출품한 대한항공의 '틸트로터' 무인항공기 |
◇ '알짜' 항공우주사업..영업이익률 17.7%
대한항공의 무인기 개발과 양산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유인 항공기의 설계, 제작, 성능개량, 정비사업 및 항공기 구조물 개발·제작 등을 아우르는 역량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5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군 '500MD' 헬리콥터를 생산하고, 'F-5 제공호' 전투기를 만들어낸 것도 대한항공이다. 이어 'UH-60' 중형기동헬기, 'KF-16' 한국형 전투기를 생산해 납품하기도 했다. 현재 ▲UH-1H ▲CH-47 ▲F-4 ▲C-130 ▲P-3C 등 국군 항공기의 창정비(廠整備)사업도 맡고 있다.
대한항공은 또 아시아·태평양지역 주둔 미군의 전투기, 수송기 및 헬리콥터의 창정비 작업도 수행하고 있다. 정부 주관 특수임무 항공기 개발사업에 참여해 2013년 해상초계기 P-3C 성능개량 사업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민간 분야에서도 보잉, 에어버스 등 해외 항공기제작사에 각종 항공기 구조물을 개발·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잉 787 기종의 첨단 복합재 구조물, 에어버스 A350 기종 카고 도어(Cargo Door), A320 기종의 '샤크렛(Sharklet)' 구조물 등이다. 최근에는 보잉 차세대 기종인 737맥스(MAX)의 '윙렛(Winglet)' 부품 공급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 매출(회계 기준 상 내부매출 제외) 및 영업익 추이 |
또 민항기 중정비 분야는 대형 항공기인 B747 4대를 동시에 정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자사 항공기뿐 아니라 타사 항공기까지 연간 100여대를 손보는 민항기 중정비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항공우주사업본부는 대한항공 전체 매출에서 볼 때 사업규모가 크지 않지만 톡톡한 수익을 내는 '알짜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올들어 9월말까지 매출 7098억원, 영업이익 1258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이 17.7%에 달한다.
매출은 전체의 8.4%에 지나지 않지만 영업이익은 전체의 27.4%에 이르는 것이다. 성장세도 다른 사업부문에 비해 탁월하다. 매출은 2010년 3429억원에 불과했지만 연 평균 20% 안팎 성장을 거듭해 올해는 1조원에 육박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난 37년간 항공기 설계와 제작, 정비에 역량을 투입했던 것이 점차 사업적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키워 '글로벌 톱10'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항공 분야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개요(매출액은 내부매출 포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