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저유가 쇼크Ⅱ]정유사, 악재를 호재로 만들다

  • 2015.12.15(화) 14:13

‘저유가→석유제품 수요 증가→마진개선’ 선순환
결제시점 및 가동률 조정으로 유가 변동성 대응

국내 산업계가 저유가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규모 장치산업 및 수주산업은 저유가 직격탄을 맞은 반면 항공 등은 원가를 크게 절감하며 많은 이익을 거두고 있다. 저유가가 국내 주요 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각 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편집자]

 

정유업은 국내 산업 가운데 국제유가와 연관성이 가장 크다. 원유를 전량 수입한 후, 국내 정제시설을 거쳐 석유제품(휘발유·경유 등)을 생산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이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 현지에서 원유를 구매해 국내로 들여오기까지는 2주 이상 소요된다.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현 시점에선 이 기간 동안 원유로 인한 재고손실 혹은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유가 흐름에 따라 정유사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이 결정된다. 고유가에 글로벌 경기침체가 더해졌던 지난해의 경우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해 정제마진이 악화됐고, 정유사들은 30여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올해는 저유가 효과로 석유제품 수요가 회복되면서 정제마진이 좋아져 큰 폭의 이익성장을 거두고 있다.

 

 

◇ 저유가, 정유업엔 호재?

 

그 동안 저유가는 정유업계에 재앙으로 여겨졌다. 과거 저유가는 석유제품 가격 하락과 정제마진 악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석유화학 제품 가격도 하락하면서 매출 감소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정부 역시 유가 하락으로 인해 석유화학 및 정유산업은 “생산비용 감소 효과가 있지만 판매가격도 낮아져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저유가는 정유사 실적 반등의 기회가 됐다. 유가 하락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늘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올 들어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배럴당 7~8달러 수준을 유지하며 지난해(4~5달러)보다 큰 폭으로 개선됐다.

 

▲자료: 각 사 3분기보고서

 

실제 국내 정유사들도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지난 3분기까지 국내 정유 4사의 누적 영업이익은 4조893억원에 달한다. 올해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 5조원 달성도 무난할 전망이다.

 

정유업계와 시장에선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영업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떨어지면서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늘어났다”며 “이로 인해 정제마진이 회복되며 지난해 영업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과거 유가가 떨어지면 정제마진이 하락하던 구조에서 최근에는 정제마진이 강세를 나타내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지금의 저유가는 구조적으로 정유사들에게 플러스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정유사, 손실 줄여라

 

정유사들이 이 같은 저유가 수혜를 지속하기 위해선 재고 및 환손실 등을 줄일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특히 유가에 의해 매출 및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출렁거리는 까닭에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고, 변동성에 대응하는 것이 필수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불발로 유가 변동성이 커져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유가 급락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국의 셰일혁명, 이란과 이라크의 본격적인 원유 수출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선 정유사들은 저유가에 대비해 원유 도입시 결제시점을 늦추는데 주력하고 있다. 유가 하락이 예상되면 원유 선적시점에 결제하던 것을 도착시점으로 바꿔 이동하는 기간(약 2주)동안 떨어진 유가로 원유를 구입할 수 있어서다.

 

또 석유정제시설 가동률을 낮춰 제품 재고량을 조절한다. 유가가 떨어지면 제품 가격도 동반 하락하는 까닭에 제품가격의 추가 하락에 대비해 재고량을 줄이는 것이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모든 구매선의 결제시점을 늦출 순 없지만 가능한 도착시점에 결제하는 비중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며 “최근 석유제품 정제마진이 좋은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유가가 떨어지면 제품가격 하락으로 인한 재고손실을 줄이기 위해 정제설비 가동률을 낮춘다”고 말했다.

 

▲ 자료: 대한석유협회

 

석유제품 재고량 뿐 아니라 판매시기도 조절하고 있다. 석유제품 가격은 원재료인 국제유가 및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상황 등 가격 결정구조가 복잡하다. 이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은 해외 현지법인 담당자를 통해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플래츠(Platts) 등 가격정보기관을 통해 제품 가격을 전망한다.

 

만약 제품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면 재고손실을 떠안지 않기 위해 가격을 낮춰서라도 제품을 판매, 재고량을 없애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 현지 트레이더를 통해 판매망을 확보, 재고량을 소진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제품 가격을 전망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각 사마다 시장을 예측해 판매시점 및 재고량을 조절한다”며 “싱가포르 트레이딩 회사를 통해서 남아있는 제품을 판매해 유가 하락에 대비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율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선 외화부채를 쌓거나 변동성이 클 경우 선물환시장에서 달러를 매매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정제마진과 재고손실

 

정유사들의 수익은 정제마진에 의해 결정된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과정을 거쳐 석유제품으로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말한다. 가령 배럴 당 40달러에 원유를 사와 석유제품을 생산, 48달러에 팔았다면 정제마진은 8달러가 된다. 정제마진은 유가와 환율, 국제석유제품 가격(우리나라의 경우 싱가포르 현물가격인 MOPS 가격 반영) 등의 영향을 받는다.

 

재고손실은 정유사가 구매한 원유 및 정제과정을 거친 석유제품 재고량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떠안게 되는 손실이다. 예를 들어 정유사가 배럴 당 40달러에 구입한 원유의 가격이 30달러로 떨어졌다면 손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최대한 결제시점을 늦추려고 한다. 생산제품 가격 역시 유가에 따라 결정된다. 유가에 의해 재고제품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탓에 정유사들은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