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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G 그랜저]②"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 2016.11.11(금) 15:09

소비자들에게 '성공' 이미지 각인
거센 도전에도 '준대형 강자' 지켜

현대차가 30년만에 6번째 그랜저를 선보인다. 그랜저는 현대차의 성공과 궤를 같이해왔다. 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차'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제는 '기함(旗艦)'의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그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그랜저에 담긴 의미는 각별하다. 그동안은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구원투수의 의미가 강하다. 어려움에 빠진 현대차를 구해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랜저에 담긴 성장의 역사와 의미, 향후 전망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서 도요타 '크라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실내는 고급스럽고, 시트 쿠션은 뛰어나다. 바깥 소음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특정 기업의 제품을 이토록 극찬할 수 있는 것은 그 제품에 대한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요타 '크라운'은 일본 소비자들에게 '고급차'의 대명사다. 수많은 메이커의 고급 모델들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도요타 '크라운'을 이길 수는 없었다. '크라운'은 그들에게 일종의 로망이자 성공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차가 우리에게도 있다. 바로 '그랜저'다.

◇ '그라나다·로얄'을 넘어라

그랜저가 출시되기 전 국내 고급차 시장은 해외 모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새한자동차가 독일 오펠(OPEL)의 '레코드(Record)'를 들여와 판매했던 '로얄(Royale)' 시리즈다. 훗날 새한자동차가 대우자동차로 바뀌면서 대우의 로얄 시리즈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또 다른 모델은 포드의 '그라나다'다. 현대차가 포드 독일 법인과 기술제휴를 통해 내놓은 모델이다. 당시 현대차는 '그라나다'의 조립과 생산을 맡았다. 6기통 대형 승용차로 국내 고급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차고(車庫)가 있는 집에는 '그라나다'가 한 대씩 들어가 있을 만큼 '부(富)'의 상징이기도 했다.

▲ 현대차가 포드 독일법인과 기술제휴를 통해 조립·생산했던 '그라나다'.

현대차가 '그랜저' 개발을 결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라나다' 때문이었다. 경제 성장으로 고급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당시 국내 자동차 메이커는 고급차를 생산할만한 기술력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조립·생산한 '그라나다'가 성공 가도를 달리자 고급차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당시만해도 '그라나다'나 '로얄' 시리즈는 고가(高價)의 모델이었다.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차량이었다. 그만큼 고부가가치 제품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없었다. 조립·생산 등 단순한 작업만 하다보니 떨어지는 마진이 많지 않았다. 현대차가 '그랜저' 개발에 나선 까닭이다.

▲ 새한자동차(훗날 대우차)가 독일 오펠社로부터 들여와 생산한 '로얄' 시리즈.

고급차는 출시 당시의 최신 기술로 무장해야 한다. 현대차에게는 그런 기술이 없었다. 결국 오랜 협력관계에 있었던 일본 미쓰비시와 손을 잡았다. 1세대와 2세대 그랜저 모델까지 현대차와 미쓰비시의 협력관계가 이어졌다. 미쓰비시와의 협력을 통해 현대차는 고급차에 눈을 떴다. 그 덕에 3세대 'XG'부터 독자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그랜저'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국내 브랜드의 첫 고급차였던 만큼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현대차도 이에 부응했다. 목표했던 '그라나다'와 '로얄' 시리즈를 제쳤다. 여기에 5년 주기로 새로운 모델들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지난 30년간 '그랜저'가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 '성공'을 이식하다

'그랜저'를 출시하면서 현대차는 '고급'을 앞세웠다. 1세대 그랜저를 선보이며 내놨던 광고 카피는 “이제 고급 승용차의 전통은 그랜저로 새롭게 시작됩니다"였다. 아울러 자신들이 생산했던 '그라나다'도 지목했다. 현대차는 "'그라나다'를 훨씬 능가하는 최고급 승용차"라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이런 '고급' 전략은 통했다. 기업체 CEO와 국회의원 등이 앞다퉈 '그랜저'를 선택하면서 그랜저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고급차'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소비자들에게 한번 각인된 인식의 힘은 무서웠다. 대우차를 비롯한 여타 메이커들은 '그랜저'를 누르기 위해 다양한 고급 모델들을 내놨지만 난공불락이었다.

'성공'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랜저'는 승승장구했다. 특히 4세대 'TG'의 광고는 백미였다. 현대차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카피를 내보냈다. '그랜저를 타면 잘 살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간접적이고 임팩트있게 강조한 셈이다. 'TG'의 광고 카피에는 현대차의 자신감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당시의 그랜저 광고는 '그랜저=성공' 혹은 '그랜저=잘 지낸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카피로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그랜저는 '성공한 사람들의 차'라는 인식이 강하게 인식 돼있었다.

'TG'는 역대 그랜저 모델 중 가장 성공한 모델로 평가 받는다. 최첨단 사양을 갖춘데다 스포티함이 가미되면서 젊은 가장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전 '그랜저'는 30~40대 가장들이 타기에는 부담스러운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현대차가 플래그십 세단으로 '에쿠스'를 내놓으면서 젊은 가장들의 부담은 현저히 줄었다.

실제로 'TG'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도 젊은 가장의 이미지였다. 나이에 상관없이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고급차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TG' 모델은 큰 성공을 거뒀다. 2011년 5세대 'HG'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TG'는 총 40만6798대가 판매됐다.

구 상 국민대 자동차 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그랜저는 마치 도요타의 고급 승용차 크라운처럼 인식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크라운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크라운만의 영역이 있는 것 같다. 현대차의 그랜저도 마치 ‘한국의 크라운’처럼 발전했다"고 밝혔다.

◇ '가질 수 있는' 로망이 되다


'그랜저'가 이처럼 인기를 끌었던 것은 소비자들에게 단순히 로망이 아닌 소유가 가능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다이너스티' 이후 현대차의 플래그십 모델은 '에쿠스'로 전환됐다. '그랜저'는 더 이상 현대차의 플래그십 모델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그랜저'를 '고급차'로 인식했다.

'에쿠스'가 최상위급 모델로 올라가면서 '쏘나타'와 '에쿠스' 사이에는 간극이 생겼다. '쏘나타'는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고 '에쿠스'는 너무 고급스러웠다. 그 간극을 '그랜저'가 메웠다. '그랜저'는 적당히 고급스럽고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기에 성공의 이미지까지 갖췄다. '그랜저'가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소다.

▲ 현대차는 95년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를 메울 모델로 '마르샤'를 출시한다. 하지만 애매한 포지셔닝과 소음 문제 등이 불거지며 판매가 부진해지자 과감히 단종을 결정하고 당초 '마르샤 XG'로 개발되던 모델을 '그랜저 XG'로 바꿔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둿다. 이는 현대차 내에서도 그랜저 브랜드의 위상이 얼마나 공고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그랜저'의 위치는 확고했다. 현대차는 95년 준대형 모델인 고급세단 '마르샤(Marcia)'를 선보였다. 당시 현대차는 각 차급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을 진행했다. '마르샤'는 '쏘나타'와 '그랜저'의 사이를 메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마르샤'는 성공하지 못했다. 소음 등 각종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랜저의 3세대 모델인 '그랜저 XG'는 원래 '마르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원래 계획된 차명이 '마르샤 XG'였다. 그러나 '마르샤'가 처참하게 무너지자 현대차는 고민했다. '마르샤'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보다 고급 승용차로 인기가 높은 '그랜저'를 유지키로 했다. 결국 '마르샤 XG'는 '그랜저 XG'로 출시됐고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랜저'라는 브랜드는 현대차 내부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고급, 성공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줬다"며 "그런 만큼 현대차가 출시한 모델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매 세대별 모델이 성공을 거뒀다. 브랜드와 제품에 처음 각인된 이미지가 실제 구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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