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30년만에 6번째 그랜저를 선보인다. 그랜저는 현대차의 성공과 궤를 같이해왔다. 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차'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제는 '기함(旗艦)'의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그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그랜저에 담긴 의미는 각별하다. 그동안은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구원투수의 의미가 강하다. 어려움에 빠진 현대차를 구해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랜저에 담긴 성장의 역사와 의미, 향후 전망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하지만 6세대 모델 출시를 앞둔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랜저'의 자체 경쟁력 탓이 아니다. 현대차가 처한 현실 때문이다.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판매량으로 현대차는 위기에 빠져있다. '6세대 그랜저(IG)'에는 이런 위기 상황을 돌파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있다. 문제는 그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점이다.
◇ 현대차, 위기에 몰리다
현대차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판매 부진 때문이다. 올들어 지난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전년대비 2.6% 감소한 389만825대를 기록했다. 해외 생산·판매를 제외한 내수 판매와 국내 생산·해외 판매 모두 전년대비 감소했다. 특히 국내 생산·해외 판매는 파업 여파로 17%나 줄었다.
현대차의 올해 판매 목표는 501만대다. 경영 환경 악화를 반영해 전년대비 낮춰 잡은 수치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이마저도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수치상 이달과 다음달 두달간 약 112만대, 한달에 평균 56만여 대를 판매해야 가능한 수치다. 올해 현대차의 월평균 만매량은 39만여 대다.
해외 생산·판매로 버티고 있지만 전체 판매 실적에 변화를 주기에는 무리다. 특히 내수 판매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현대차에게 큰 부담이다. 지난 10월까지 현대차의 내수 판매는 전년대비 6.5% 줄어든 52만9849대에 그쳤다. 내수가 흔들리다보니 해외 판매도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다.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에 잇단 품질 관련 이슈까지 불거진 탓이 컸다. 작년까지 현대차를 괴롭혔던 수입차는 폭스바겐 사태 이후 주춤한 상태다. 현대차에게는 분명 호재였지만 살리지 못했다. 여기에 여타 국내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신차들을 쏟아내면서 현대차의 파이를 가져갔다.
현대차에게는 올해 주목할만한 신차도 없었다. 이는 모델 노후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나았다. 모델 노후화는 자동차 업체에게 치명적이다. 르노삼성이 SM6와 QM6를 내놓기 전까지 암흑의 시기를 겪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들이 겹치면서 소비자들은 현대차에게서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 실패의 경험
현대차는 현재 잔뜩 긴장한 상태다. 현대차가 신차를, 그것도 인기 볼륨 모델 출시를 앞두고 이토록 긴장한 적은 없었다. 최근 현대차를 둘러싼 각종 악재와 판매 부진에 따른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형 그랜저마저 실패한다면 향후 현대차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출시 일자부터 사전 마케팅 등 지금껏 출시했던 그 어떤 신차보다도 세세하고 꼼꼼하게 모든 상황들을 체크하고 있다"며 "그룹 최고위층에서도 이번 신형 그랜저 출시와 각종 전략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 출시를 앞두고, 지난 2014년 출시해 쓴맛을 봤던 LF쏘나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모든 면에서 세심한 준비를 하고 있다. 신형 그랜저마저 실패한다면 현대차의 미래가 더욱 어두워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
현대차가 이토록 긴장하고 있는 데에는 신형 그랜저가 가지는 중요성도 있지만 이미 한 번 겪어봤던 인기 볼륨 모델의 실패 사례가 있어서다. LF쏘나타가 그 에다. 현대차에게 있어 쏘나타 모델은 아반떼, 그랜저와 함께 대표적인 인기 볼륨 모델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모델이었다.
지난 2014년 현대차는 7세대 쏘나타를 출시했다. 당시에도 현재와 상황이 비슷했다. 현대차는 내수 시장에서 수입차의 공세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7세대 쏘나타는 이런 현대차의 상황을 타개할 구원투수로 주목받았다. 현대차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출시 5개월만에 월 판매 4000대 수준으로 무너졌다.
현대차는 충격에 빠졌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현대차는 이때 교훈을 얻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과 이제 현대차가 출시만 하면 날개 돋힌듯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는 점이다.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 출시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현대차의 이런 긴장감이 전달됐던 것일까. 신형 그랜저는 지난 2일 사전 계약에 돌입한 이래 12일만인 지난 13일 현재 2만4305대의 사전 계약 대수를 기록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2000대가 계약된 셈이다. 통상적으로 사전 계약 대수가 온전히 실제 출고 대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을 볼 수 있는 척도로는 유용하다.
신형 그랜저는 사전 계약 첫날부터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첫날인 지난 2일에만 총 1만5973대가 계약됐다. 이는 올해 국내 준대형차 월평균 판매대수인 1만586대를 5000대 이상 넘어선 수치다. 또 현대차가 국내 사전 계약을 실시했던 차종 중 역대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 현대차 6세대 그랜저(IG). |
현대차는 일단 스타트는 잘 끊었다고 보고 있다. 아직 성패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사전 분위기는 좋다는 판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각보다 많은 사전 계약이 이뤄져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많다"면서 "소비자들의 기대가 큰 만큼 실제 출시 준비에도 만전을 기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형 그랜저에 대한 반응이 좋은 것은 '그랜저' 브랜드에 대해 그동안 축적돼왔던 소비자들의 신뢰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신형 그랜저의 경우 바뀐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좋은 데다 각종 최첨단 편의사양과 안전사양이 장착돼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아울러 가격도 2620만원에서 시작해 적절한 포지셔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신형 그랜저'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적절한 타협과 차별화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평가가 많다"며 "현대차로서는 당장 '신형 그랜저'의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는 내년, 내후년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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