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교수가 올해 트렌드 키워드로 '치킨런(chicken run)'을 꼽았습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함께 2007년부터 매년 띠동물을 주제로 한 트랜드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요.
닭장을 뜻하는 이 말은 2000년 개봉한 영화 <치킨런>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영화는 2000년 모든 연령대가 관람 가능한 영화 차트(Yearly G rated 2000) 순위에서 1위에 올랐는데요. 한국에서는 같은 해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소설이 출간돼 2011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닭장 탈출을 그리고 있습니다. 밀레니엄을 맞은 해 세계 여러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닭장 탈출이 2017년 한국의 소비트렌드를 읽을 흐름으로 재조명 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 그래픽: 유상연 기자 prtsy201@ |
2016년 하반기 정국을 초토화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새해들어서도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영미권에서 치킨런은 마지막 순간에 이뤄낸다는 의미로도 쓰이는데요. '최순실'이라는 이름에 녹아든 악습의 고리들이 끊기는 치킨런이 2017년에 이뤄지길 소망해 봅니다.
김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치킨런과 함께 올해 소비트렌드를 읽을 10가지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욜로 라이프 ▲B+ 프리미엄 ▲픽미세대 ▲캄테크 ▲영업의 시대 ▲1코노미 ▲바이바이 센세이션 ▲수요중심시장 ▲경험 is 뭔들 ▲각자도생이 그것인데요.
'어차피 홀로 살아 남아야 하는 시대, 분수에 맞는 소비를 즐기자'는 흐름으로 읽힙니다. 각 키워드가 나오게 된 배경을 진단하고 키워드들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보겠습니다.
# 혼자 사는 인생, 'YOLO' 정신으로
①욜로 라이프 ②1코노미 ③각자도생
진단 : 시스템 불신
한국인의 집단정서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전과 후로 나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을 믿은 아이들이 바닷속에 갇히게 된 비극이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낳은 건데요. 책을 펴낸 김 교수도 현재의 한국 상황을 두고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엔진이 고장 난 조각배에 선장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 형국"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지난해 연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같은 정서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국정이 비선에 의해 농락됐다는 사실에 수백만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요. 각자도생이 시대를 읽는 키워드가 된 건 국민들이 보내는 경고인 셈입니다.
각자도생이라는 처방전을 내놓은 이들이 만든 소비 문화가 1코노미와 욜로 라이프입니다. 1코노미는 혼자를 의미하는 1과 경제를 의미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혼밥·혼술과 같은 홀로하는 소비를 지칭하는 신조어입니다. 욜로(YOLO)는 인생은 한번 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영어 표현의 줄임말이고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혼자라도 즐기자'는 소비 방식이 문화로 자리잡은 결과로 해석됩니다.
김 교수는 "저성장 시대라고 해서 인간의 뽐내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니고, 단지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이 바뀔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 "격식은 가라"…눈치 안 보는 소탐시대
①B+ 프리미엄 ②캄테크 ③바이바이 센세이션
진단 : 팍팍한 살림
실업자가 100만명을 돌파하며 지난해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2030세대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하지요.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살 건 사써야 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소비 문화가 싹텄습니다.
B+ 프리미엄은 지난해 김 교수가 꼽은 소비트렌드 '가성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A급 상품·서비스는 못 누리더라도 삶의 질을 B급으로 떨어뜨릴 수는 없다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살림에서 프리미엄 소비 추구는 안 사도 될 건 과감하게 포기하는 바이바이 센세이션(Bye-Buy Sensation : 사는 것을 포기하는 현상) 신드롬을 낳았습니다. '미니멀라이프' '버림의 미학'과 같은 단어가 지난 한해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란을 메운 소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캄테크(Calm Tech : 조용한 배려 기술)가 뜨는 현상 역시 가성비를 높게 치는 소비 문화의 일환으로 읽힙니다. 캄테크 시대를 예언한 마크 와이저(Mark Weiser) 컴퓨터학 박사는 "정보를 주지만 관심이나 주의는 요구하지 않는 첨단 기술"로 캄테크를 정의했는데요. 값비싼 첨단 기술 가운데서도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스마트홈 시장의 성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뽑힐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
①픽미세대 ②영업의 시대 ③수요중심시장 ④경험 is 뭔들
진단 : 잉여력 폭발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9.8%로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선택 받아야 살아 남는 '픽미세대'라는 단어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죠.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청년층 가운데 일부는 취업 대신 창업·창직에 나섰습니다. 스스로 기업이 되는 '1인 기업'도 이 같은 환경에서 새로운 직업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진 뉴노멀 시대가 익숙한 청년층에게는 생산과 소비의 경계 또한 모호합니다.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MCN(Multi Channel Network : 1인 방송 시장) 산업의 경우 서비스의 소비와 경험의 판매 사이에 장벽이 없다시피 합니다. 신제품 리뷰만으로 소득을 올리는 파워블로거, 먹방으로 돈을 버는 유튜버 등이 대표적인데요. 수요중심시장(소비자의 수요가 실시간 반영된 상품·서비스가 제공되는 시장)에서 소비경험자가 영업(공급 과잉 시대에서 맞춤식 영업이 더 중요해지는 현상)을 하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