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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명분보다 실리를 챙겼다

  • 2017.09.20(수) 18:47

도시바 인수전, 돌고 돌아 결국 SK하이닉스로
웨스턴디지털 막판 뒤집기 차단하고 최종낙점

돌고 돌았지만 이변은 없었다. 전세계 낸드플래시 2위 업체인 일본 도시바메모리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한미일 연합의 품에 안기게 됐다.

20일 NHK·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도시바메모리를 SK하이닉스가 참여하고 있는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 도시바 이사회가 "한미일 연합이 기업가치와 기술유출방지, 고용보장, 거래의 확실성 등에서 가장 우위였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밝힌지 석달만에 도장을 찍게 된 것이다.

 


◇ 우여곡절 끝에 승자로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은 순탄하지 않았다. 6월 중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최종 마무리만 남은 상황에서 도시바와 협력관계에 있는 미국 웨스턴디지털이 몽니를 부려 SK하이닉스의 인수전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웨스턴디지털은 한 손에는 소송, 다른 한 손에는 SK하이닉스로의 기술유출 가능성을 들먹이며 반전을 노렸다.

삼성전자와 도시바에 이어 세계 3위의 낸드플래시 제조업체인 웨스턴디지털은 2015년 도시바와 협업관계에 있던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샌디스크를 인수하면서 일본 미에현(県)에 위치한 도시바 요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게 된 도시바의 사업파트너다. 웨스턴디지털은 협상 기간 내내 독점교섭권을 요구했다.

일본 정부도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지분을 갖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SK하이닉스는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 형식으로 투자하기로 했는데 일본 정부는 난색을 표시했다.

한미일 연합의 핵심축은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이다. SK하이닉스가 처음엔 자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참여하지만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꾸고 베인의 지분마저 인수하면 도시바메모리 경영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웨스턴디지털의 반격…물거품 위기도

 

급기야 지난달에는 한미일 연합을 배제한 채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이 속해있는 미일연합과 협상을 벌이면서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인수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한미일 연합은 도시바의 핵심고객인 애플을 끌어들이고, 인수금액을 당초 2조엔에서 연구개발비를 포함한 2조4000억엔으로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에는 나중에 SK하이닉스가 확보할 도시바메모리 지분을 15% 이하로 제한을 두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뛰어든 것은 양사간 협력을 원해서지 기술을 빼가거나 경영권을 노리는 게 아니라는 점을 내세운 것이다. SK하이닉스로선 도시바메모리가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돼 낸드플래시 시장이 삼성과 웨스턴디지털 2강 체제로 고착화되거나 다른 경쟁자의 출현을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안을 접한 도시바는 또다시 흔들렸다. 도시바는 지난 13일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도 웨스턴디지털 중심의 미일 연합과 중국 훙하이 주도의 컨소시엄과도 협상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최종 매각결정을 앞두고 좌고우면한 흔적이 역력했다.

◇ 잠재적 경쟁자 막는 실리 챙겨

 

눈여겨볼 대목은 당시 도시바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SK하이닉스의 이름이 전혀 언급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한미일 연합의 일원으로 조(兆) 단위(우리돈 약 5조~6조원)의 돈을 투입하면서도 인수후보에는 거론조차 되지 않은 굴욕을 감내한 셈이다.

이날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직전 웨스턴디지털은 인수가격을 올리고 SK하이닉스처럼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도시바에 제안했지만 너무 늦었다. 도시바 이사회는 웨스턴디지털의 경영 포기 제안을 시기와 방법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웨스턴디지털은 명분 대신 실리에 치중한 SK하이닉스에 밀렸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낸드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시바메모리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할 수 있는 데다 경쟁사들의 시장진입을 차단하는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앞서 나이스신용평가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한다면 중국 및 대만 등의 잠재적인 경쟁기업보다 기술적 우위를 상당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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