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 놓은 당상’으로 여겨지던 SK하이닉스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인수전이 최근 들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꽉 막힌 모양새다. 당초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해 놓고도 다른 인수 후보군들과 매각 협상을 벌이는 등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서다.
13일 NHK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도시바는 사업 파트너사인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대만 홍하이그룹과 메모리 반도체 부문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지난달 21일 입찰에서 2조엔(약 20조원) 가량을 써낸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던 도시바 인수전에 웨스턴디지털의 소송 제기에 이어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가 추가로 등장했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에서 비롯됐다. 한·미·일 연합에 3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대기로 한 가운데 투자방식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어서다. 당초에는 단순 자금 융자로 알려졌지만 향후 지분 소유가 가능한 전환사채(CB)로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부정적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
나루케 야스오 도시바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정기주총에서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탈이 설립하는 특별목적회사(SPC)에 대출해주는 형태로 참여해 의결권과 경영권이 없고, 따라서 기술유출 위험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오니시 토모유키 테츠야 교수는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 겐다이’에서 “SK하이닉스도 거액의 돈을 투자해서 도시바 메모리 사업 매각 입찰에 나선 것을 주주들에게 설명해야 할 텐데 그 때 지분 확보 없이 융자에 나섰다고 설명한다는 게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미·일 연합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도 인수전에 뛰어들 때 ‘일본 반도체 산업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 봉쇄’를 명분으로 내건 만큼, SK하이닉스가 지분 확보를 포기하지 않은 한 SK하이닉스에 힘을 실어주기 어렵지 않겠나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8일 도시바 주주총회 전까지 도시바와 한·미·일 연합간의 본계약 체결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던 SK하이닉스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하지만 ‘고(Go)!’를 외치고 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12일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인수하는 방향으로) 계속 협상 중”이며 “인수 포기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지분 확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세간의 시각과는 선을 긋고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냈다.
SK하이닉스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또 있다. 도시바의 파트너사 웨스턴디지털의 반대 공세다.
2015년부터 도시바 요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개발 과정에 참여한 웨스턴디지털은 반도체 사업 매각 우선협상권을 도시바 측에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SK하이닉스가 우선협상자 중 하나로 선정되자 “동종 업계에 있는 SK하이닉스가 참여한 곳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시바가 계속 매각 협상을 진행시키자 지난 5월과 6월에 걸쳐 국제중재재판소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매각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 소송에서 웨스턴디지털의 매각 중단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도시바 매각 절차가 한 순간에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오는 14일 해당 내용과 관련한 심의를 진행하고 이르면 같은 날 심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