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의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가 황제주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1주에 250만원이나 하는 까닭에 사고 싶어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소액주주들을 위한 조치다. 총수 부재라는 비상 상황 속에서 황제의 자리를 떠나 주주들 속으로 한걸음 다가간 행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31일 이사회를 열고 주식 액면분할을 비롯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액면분할은 기존 주식의 액면가를 일정비율로 나눠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00원짜리 주식 1주를 10개로 쪼개 500원으로 만든다. 액면분할을 하면 주당가격이 낮아지고 주식수가 늘어난다. 이에 따라 더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해 거래가 활발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삼성전자는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50대 1의 액면분할 시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현재 5000원인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가는 100원으로 조정된다. 주식수는 1억2827만주에서 64억1932만주로 늘어난다.
그간 주식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분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자사주 소각, 분기배당 등의 주주환원정책을 폈을 뿐 액면분할 자체에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주가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데다 소액주주들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입장을 바꾼 것은 주식을 사들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주가가 높다는 표면적 이유와 함께 삼성에 대한 우군을 더욱 두텁게 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소액주주들이 많아져 쓴소리를 들을 일이 늘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우리 편'을 만드는 게 필요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대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는 지금이 더 많은 주주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적기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날 '영업이익 50조원 돌파'라는 성적표를 내놨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기록한 수치다. 메모리 반도체 호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39조5800억원, 영업이익은 53조65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이 매출의 30%, 영업이익의 65%에 달했다. 반도체부문의 영업이익률은 47%를 기록했다. 1000원어치를 팔면 그 절반을 이익으로 남겼다는 얘기다.
4분기에도 이 같은 상승세가 이어졌다. 모바일과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면서 지난해 4분기 15조1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부문별로 보면 IM(IT·모바일)부문은 중저가 스마트폰의 판매감소와 성수기 마케팅비 증가로 영업이익이 줄었지만 반도체가 처음으로 10조원대 이익을 낸 게 전반적인 실적을 끌어올렸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합한 DS부문의 영업이익은 12조2000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