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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현대아산과 범현대家의 외면

  • 2018.06.20(수) 15:41

1999년 현대상선 등 8개사 출자 4500억원으로 출범
‘왕자의 난’ 계기 분열…아산 지원 오로지 현대의 몫
현대엘리外 현대차·건설·백화점 등 주주사로서 공존

남북경협의 상징 현대아산이 ‘잃어버린 10년’을 뒤로 하고 온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올 들어 남북, 북미간 연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모드 조성과 남북경협 재개 기대감이 커지면서 대북사업을 주도해 온 현대아산을 주목하고 있다.

요즘의 현대아산을 바라보는 범(汎)현대가(家)들도 만감이 교차할 법 하다. 선대의 유훈(遺訓)과도 같은 상징성을 갖지만 한편으로는 ‘왕자의 난’ 이후 켜켜이 쌓인 앙금을 투영해왔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포분열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것은 1989년 1월. 국내 기업인 최초의 북한 방문이었다.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가 체결됐다. 남북경협의 서막이었다.

1998년 6, 10월에는 각각 500마리, 501마리의 이른바 ‘통일소’라 불린 소떼를 이끌고 방북길에 올랐다.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개발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그해 11월 바닷길을 통해 금강산관광의 문이 열렸다.

이듬해 2월, 정 창업주는 자신의 호 ‘아산(峨山)’을 사명(社名)으로 한 ‘㈜아산’(설립 직후 현 현대아산으로 개명)을 출범시켰다. 대북 관광 및 개발사업 전담창구였다. 대북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였다. 

자본금 1000억원으로 출발했다. 2000년 5월까지 5차례에 걸친 추가 유상증자를 통해 총 4500억원을 확보했다. 남북경협 사업의 종자돈이었다. 

8개사가 돈을 댔다. 현대상선(지분 40.0%·출자금액 1800억원), 현대건설(19.8%·893억원), 현대중공업(19.8%·893억원), 현대자동차(5.0%·225억원), 현대미포조선(5.0%·225억원), 현대증권(4.6%·203억원), 현대백화점(2.9%·131억원), 현대종합상사(2.9%·131억원) 등이다.

2000년 3월 정 창업주의 와병 중 ‘왕자의 난’이 발발했다. 차남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5남 고 정몽헌 전 현대 회장이 경영 대권(大權)을 놓고 맞붙었다. 정몽헌 회장의 승리였다.

후계가 정몽헌 회장으로 마무리되면서 왕권 다툼에서 패한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계열사들을 가지고 2000년 8월 현대를 떠났다. 2001년 3월 정 창업주가 타계한 이듬해 2월에는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현대중공업이 나갔다.

‘왕자의 난’은 7남 정몽윤 회장의 현대해상화재보험(계열분리 1999년 1월), 3남 정몽근 명예회장의 현대백화점(1999년 4월)에 이어 ‘몽(夢)’자 항렬의 정 창업주 2세들의 세포분열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됐다.

당시 현대는 투신, 건설, 전자, 상선 등 주요 계열사들이 자금난을 겪던 시기였다. 현대가 유동성 위기도 핵분열을 가속화하는 데 한 몫 했다. 2003년까지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현대종합상사 등은 채권단 손으로 넘어갔을 정도다.

 

▲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아산 사옥에 전시된 고 정주영 명예회장 기념물.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인연 끊기

선대 대북사업의 유지는 오롯이 현대의 후계자 정몽헌 회장 몫이었다. 2003년 8월 정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부인 현정은 회장이 현대를 승계한 뒤로는 현대아산은 범현대가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아 왔다.

2003년 현대를 놓고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인 ‘시숙(媤叔)의 난’과 2006년 정몽준 이사장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사전예고 없이 현대의 주력사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던 ‘시동생의 난’이 일어났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현대아산 2대주주(현대미포조선 포함 지분 24.8%)였던 현대중공업은 이미 오래 전에 현대아산과의 인연을 끊기 시작했다. 2002년 2월 현대아산 지분 중 절반인 9.9%를 현대아산에 증여하면서 부터다. 분가를 위한 것이었다.

2001년의 현대아산은 여전히 수익을 내지 못해 60%가 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팔려고 내놔도 대북사업 위험까지 안으며 살 곳은 없었다. 결국 증여를 통해 14.9%로 떨어뜨림으로써 계열분리 요건 15% 이하를 맞췄다.

2005년 11월에 가서는 아예 싹 정리했다. 대북 물류사업을 하던 현대 소속 현대택배(현 롯데글로벌로지스)가 13.8%(2004년 4월 90% 무상감자 반영)를 전량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현대아산에 1120억원을 출자하고도 현대중공업이 손에 쥔 돈은 47억원(주당 3500원) 남짓이었다.
 
끊어진 듯 보였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질긴 인연이었다. 현대종합상사를 통해서 였다.

현대중공업이 2003년 6월 이후 채권단 관리 상태에 있던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한 것은 2009년 12월. 편입 당시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아산 지분 2.0%를 갖고 있었다. 총 136억원을 투자하고 보유해온 주식이다. 2012년 3월에 가서야 현대 계열의 현대유엔아이에 13억원(주당 3500원)을 받고 넘길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액면가(5000원)에도 한참 못미치는 매각했다는 것은 지분정리에 대한 욕구가 강렬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속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와 엮이거나 이름이 오르내릴 일은 없어졌다.   

 


깊어진 앙금

범현대가는 이후로도 현대아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창립 이래 현대아산의 봄날은 딱 3년뿐이었다. 2005~2007년이다. 영업흑자를 기록했던 해다. 금강산관광객이 한 해 34만8000명(2007년)을 찍었을 때다. 하지만 이뿐이었다. 현대아산에게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은 치명타였다. 2016년 2월에는 개성공단 사업마저 멈췄다.

현대아산으로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결손금을 까고,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 자본확충을 하는 게 일이었다. 2004년 4월 90% 무상감자를 실시했고,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2009년 4월~2013년 12월 5차례에 걸쳐 708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현대아산의 주주로 있던 현대자동차와 현대백화점은 당연히 단 한 푼도 추가 출자가 없었다. 남북간 군사적 대치, 북한 핵문제 등으로 예나 지금이나 위험의 정도를 특정할 수 없는 대북사업의 위험이야 현대아산의 재무실적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실상 ‘남남’이 된 곳에 남 좋은 일 해줄리 만무했다. 

남남? 남남 맞다! 현대차가 신흥증권(HMC투자증권)을 인수하고, 현대중공업이 CJ투자증권(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한 게 각각 2008년 5월과 9월의 일이다. 현대증권을 주력사업 중 하나로 해 온 현대에 대한 영역 침범이었다.

2010년 5월 현대건설 인수전이 개시된 뒤에는 현대와 현대차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였다. 현대건설이 현대의 모태이다보니 적통성을 누가 확보하느냐의 싸움이었고, 결국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는 초유의 일까지 빚어지며 갈등의 골은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현대건설 또한 2001년 4월 이후 10년간 채권단 관리 아래 있었고, 2011년 4월이후로는 현대차와 ‘한 지붕’ 생활을 하게 됐으니 현대아산 자본확충 요청에 손사래를 친 것은 뻔했다.

결국 현대아산 지원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의 당시 현대 소속 주주사들과 임직원들 몫이었다. 현정은 회장도 49억원(현 소유지분 4.0%)가량의 사재를 들였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를 비롯한 세 자녀도 17억원(1.4%)를 댔다. 

 

▲ 서울 종로구 현대아산 본사.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온도차

현재 현대아산의 최대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다. 1대주주가 현대상선에서 현대엘리베이터로 교체된 것은 2013년 현대를 강타한 경영위기에서 비롯됐다. 해운업 장기불황으로 인해 주력 중의 주력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2013년 12월 3조3000억원의 자구안을 마련해야 했다. 2005년 1월 현대택배를 롯데에 매각했고, 2016년 3월에는 현대증권이 KB금융에 매각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현대상선을 채권단에 완전히 넘겼다. 

현대상선이 원래 현대아산의 최대 출자사로 나섰던 것은 금강산 관광객 모집과 여객운송사업을 전담하는 금강산관광사업의 공동주체였던 까닭이다. 소유지분이 67.6%까지 간 적도 있다.

현대아산 초기 출자 1800억원에 이어 2009~2013년 유상증자 당시 562억원, 여기에 현대택배 소유의 지분(13.8%)까지 202억원에 인수한 까닭이다. 총 2560억원(주당 평균 1만5800원)어치다. 

현대엘리베이터 소유가 됐다. 현대상선이 계열분리에 앞서 2015년 11월과 2016년 1월 732억원(주당 평균 4524원)을 받고 넘긴 때문이다. 현대상선으로서는 1380억원 손실을 봤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1월에는 현대유엔아이가 보유 중인 2.1%도 19억원(주당 3730원)에 추가로 사들였다. 출자금액은 총 750억원(주당 평균 4500원)이다.

1대주주 현대엘리베이터(69.7%) 다음으로는 현대건설 7.5%, KB증권 5.0%, 현대차 1.9%, 현대백화점 1.1%로 뒤를 잇고 있다. 이외 12.6%가 소액주주를 비롯한 기타주주 몫이고, 잔여지분 2.3%는 현대아산이 자기주식으로 가지고 있다.

아직 손을 뻗어 닿을 만큼 가까이 가진 않았고, 시야는 흐릿한 게 사실이지만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맞물려 가장 주목받고 있는 범현대가이지만 현대아산의 주주사로서 공존하고 있는 현대와 현대차의 대응은 온도차가 느껴진다. 

대북사업을 주도해 온 현대는 5월 초 현대아산이 TF를 구성하는 등 남북경협 준비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현대건설이나 현대차는 여전히 신중 모드다. 선대의 유훈 같은 존재 임에도 현대아산을 외면해왔던 범현대가 이제와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한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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